일 자민당, "국회의원 임기연장" 미끼로 개헌 추진?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필생의 꿈'으로 개헌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집권 자민당이 개헌의 구체적인 내용의 하나로 재해 발생 시 국회의원의 임기연장을 헌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들고나와 이를 미끼로 개헌을 추진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일본 중의원 헌법심의회는 16일 "참정권 보장"을 주제로 이번 국회 들어 첫 실질심의를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임기를 현행 연속 '2기 6년'에서 '3기 9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당 규정 개정안을 의결한 이달 초 당 대회에서 "개헌 발의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리드해 나가겠다"며 '강력한 개헌 의지'를 밝혔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개헌과 관련해 국회의원의 임기연장을 헌법에 명기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중의원 해산 등으로 의원이 없는 상태에서 대규모 재해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의원의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특례조항을 헌법에 명기한다는 것이다. 재해를 내세우면 야당과 국민의 이해를 얻기 쉽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국회의원의 임기연장'이 개헌에 반대하는 야당에 일종의 당근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실제로 이날 회의에서 개헌에 반대하는 야당인 민진당과 개헌에 소극적인 연립여당 공명당의 일부 의원들도 재해시 의원의 임기연장은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심의에서 자민당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의원이 헌법사항인 국회의원의 임기를 연장하려면 "헌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을 꺼내자 같은 당 나카다니 겐(中谷元) 전 방위상도 "여야의 헌법관을 넘어 의견을 같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맞장구를 쳤다.
이에 대해 민진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의원은 "검토할 만 하다. (임기를 연장하려면) 헌법상 근거가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검토해야할 사항이 복잡하고 광범위해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국회가 의원의 임기를 연장하는 것은 제밥그릇 챙기기로 비쳐질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그러자 같은 당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대표대행이 나서 "예를 들어 180일을 상한으로 임기를 연장하는 형식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입법기관이 기능하게 되기 때문에 필요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민진당 지도부는 아베 정권하에서의 헌법개정에 부정적이지만 호소노 의원의 제안은 자민당이 마련한 논의무대에 올라선 모양새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반색했다.자민당은 2012년에 마련한 헌법개정 초안에 큰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긴급사태조항"을 집어넣고 개헌안의 "대표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하면 내각의 판단만으로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 긴급명령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계엄령과 같다"는 비판이 야당과 전문가들에게서 일제히 제기됐다.
중의원 심의에서도 공명당의 기타가와 가즈오(北側一雄) 의원이 총리에 대한 권한집중과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의견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제동을 걸였다.
이에 대해 자민당의 후나다 하지메(船田元) 의원은 "의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보장하면 (재해시에) 긴급명령 등으로 대처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고 말해 긴급사태조항 중 긴급명령은 사실상 철회하고 임기연장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자는 입장을 보였다.
국회의원의 임기 연장에 대해서는 "현행 헌법의 참의원 긴급소집 규정으로도 충분하다"거나 "개헌을 위한 개헌"이라는 지적이 전부터 제기돼 왔다. 헌법심의회에서도 공산당과 사민당은 "정부가 긴급사태라고 계속 선언하는 한 정권을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게 된다"면서 "이는 국민의 뜻을 물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 국민주권에 대한 침해"라며 임기연장에 반대했다.
아사히는 자민당이 개헌논의의 초점을 국회의원의 임기연장에 맞춘다는 입장이어서 이 문제가 앞으로 개헌논의의 초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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