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한미FTA 협상 주역…치열했던 5년전 뒷얘기
김종훈 "FTA는 법치주의 기반한 무역규정·사실규명이 우선"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양국 수석대표로 활약했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대행(현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이 한미FTA 발효 5주년을 맞은 15일 만나 회고담을 나눴다.
김 전 본부장과 커틀러 부회장은 이날 한미 발효 FTA 5주년을 기념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한미FTA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토론했다.
이들은 현재 미국에서 재협상 대상으로 거론되는 한미FTA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당시 치열했던 협상 과정과 어려웠던 내부 상황을 털어놓았다.
커틀러 부회장은 당시 협상 과정을 두고 "한국이 시장개방,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며 "반드시 미국이 (FTA를) 강요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의지를 보인다는 점이 FTA 타결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강화시켰다"고 회상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는 "100여명에 이르는 협상팀을 이끄는 것"을 꼽았다.
그는 "챕터별로 5∼7명이 필요했는데 어떤 그룹은 자연스럽게 협상에 도달하기도 했지만 계속 싸움만 하는 곳도 있었고, 더는 못하겠다며 미국에 돌아가겠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한 협상 과정에서 전환점이 됐던 것은 2006년 말 몬태나주에서 진행된 협상이라고 말했다.
커틀러 부회장은 "당시 김종훈 본부장은 많은 불만을 표현했지만, 협상 대표로서 최선을 다했다"며 "양측이 각국에 돌아가 좀 더 유연한 자세를 취하도록 설득하고 오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실제 이후 협상이 역동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2010년 재협상에 대해서도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커틀러 부회장은 "부시 행정부에서 오바마 행정부로 전환되면서, 한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오고 양보받아야만 FTA를 발효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며 "내부적으로 많은 요구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김 전 본부장은 "한국에서 '이미 타결된 협상문에 대해서는 단 한 줄, 점하나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었다"며 "하지만 정치적 동인, 맥락은 다른 문제였고 정치적 압력은 저에게 큰 부담이자 압력이었다"고 말했다.
양국 협상단은 내부에서도 강한 업계 반발에 부딪혔다.
커틀러 부회장은 특히 농산품, 섬유, 직물, 자동차, 제약산업의 무역 구제 부분에서 반발이 컸다고 전했다.
그는 "많은 시간을 들여 전문가 조언을 받고 이해관계자들과 대화했다"며 "국내 관계자보다 김종훈 대표의 말이 더 설득력 있다고 느껴진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 전 본부장 역시 당시 농산품 부문과 중소기업에서 많은 우려를 제기했었다며 "그러나 과장된 우려들이 아직 가시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치주의에 기반한 무역규정"이 한미FTA의 핵심이자 혜택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1년을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무엇을 적용하라고 상대에게 요구한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느냐"며 "한미FTA는 우리가 공통으로 합의한 규정"이라고 말했다.
김 전 본부장은 또 양국 정부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사실규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에서 양국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이견을 수용하는 데 있어 정부 간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자세하고 정확한 상황 진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미FTA 5년간의 성과와 오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업그레이드 혹은 재협상 등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사실 규명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협상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을 묻자 김 전 본부장은 "후회라면 당시 너무 애국적이고 방어적으로 나갔던 점"이라고 말했다. 당시 반대 여론에 밀려 국내에서 수세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건 할리우드 액션은 아니고 저의 답답함이 표출된 과정이었다"며 "다시 기회가 온다면 좀 더 합리적, 이성적이고 부드럽게 나갈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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