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바닷모래 채취 절대 용납안돼"…망망대해서 해상시위
풍랑주의보로 모래 채취해역 못간 100여척 욕지도 남쪽서 시위
(통영=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15일 오전 11시께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국도 앞바다.
여기저기서 제법 큰 선박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줄잡아 1백여척은 돼 보였다.
어민들은 선박을 타고 정부의 바닷모래 채취 연장 강행에 반발하는 대규모 해상시위에 들어갔다.
바닷모래 채취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진 후 어민들이 이처럼 대규모 해상시위를 벌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먼바다여서 규모가 작은 연안 어선들은 정박한 포구나 가까운 바다에서 바닷모래 채취 연장 철회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에 나섰다.
대형선망, 대형기선저인망, 기선권현망, 근해통발수협 소속의 규모가 큰 선박들이 주로 욕지도 남쪽 국도 해상까지 진출, 해상시위에 참여했다.
이들 어선은 이른 아침 부산항과 울산항, 통영항, 남해항 등을 떠나 2∼3시간 먼 길을 달려왔다.
며칠 전부터 시위 해역 주변에서 조업을 하던 선박들도 동참했다.
하지만 바닷모래 채취현장과는 배로 1시간가량 떨어져 있어 시위는 다소 맥이 빠진 모습이었다.
참여 선박 규모도 예상보다 적었다.
애초 선박들은 국도에서 25km 떨어진 바닷모래 채취현장에서 시위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해역에 풍랑주의보가 내려 시위 현장을 욕지도 남쪽 국도 주변으로 정했다.
정부가 바닷모래 채취 연장을 결정했지만 골재 채취업체에 대한 면허는 아직 발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역에 모인 선박들은 곧 재개될 바닷모래 채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바닷모래 퍼나르면 어족자원 말살된다'는 등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선박에 내걸었다.
이날 낮 12시 50분께 시위 선박들은 바닷모래 채취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일제히 뱃고동을 울렸다.
뱃고동은 30초간 길게 3차례 이어졌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뱃고동이 바닷속 어패류의 단잠을 깨우는 듯했다.
이윽고 선박들은 바닷모래 채취 현장을 몇차레 돌며 해상 퍼레이드에 나섰다.
대낮임에도 선박들은 조명을 최대로 밝혔다.
더이상 바닷모래를 채취하면 어장이 황폐화될 게 뻔하다면서 현장을 빙빙 돌았다.
시위를 이끈 남해EEZ바닷모래채취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전국 90여 수협에서 어선 4만여척이 바닷모래 채취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해상시위에 나선 정연송(대형기선저인망수협 조합장) 남해EEZ바닷모래채취대책위원장은 "바닷모래 채취는 어민 심장을 도려내는 행위"라며 "더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어민들의 의지를 오늘 분명히 전달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하나의 산업을 죽이면서 또 다른 산업을 살리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수산업과 건설업이 골고루 발전할 수 있는 혜안을 찾고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함께한 더불어민주당 최인호(부산사하갑) 의원은 "바닷모래 채취는 특정 업계와 업자의 이득만을 보장하는 불균형적 산업정책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16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질의를 통해 경제부총리,국토부·해수부 장관을 상대로 바닷모래 채취 허가 연장의 부당성을 집중 제기하고 철회를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는 어민들의 지속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국토교통부의 제4차 남해 EEZ 바닷모래채취단지 지정연장 신청에 대해 지난 1일부터 1년간 650만㎥를 채취할 수 있도록 협의 의견을 통보했다.
시위를 마친 선박들은 서둘러 출항한 항·포구로 돌아가거나 조업을 이어갔다.
시위 대상이 없는 가운데 이뤄진 이날 시위는 2시간 만에 종료됐다.
선박들이 떠난 해역은 점차 강해지는 바람에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할 뿐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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