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자칼' 佛법정서 "나는 타고난 킬러지만 폭력 싫어"
"나는 프로혁명가…인정 많아서 죽여야할 사람 못죽인 것 후회"
한껏 차려입고 법정서 취재진에 손키스…검찰 "카를로스는 민주주의의 적"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서 나보다 더 많이 사람을 죽인 자는 없을 거다. 그래도 난 폭력이 싫다."
1970∼80년대 유럽을 떨게 한 악명높은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더 자칼'이 법정에서 자신의 직업을 '프로 혁명가'로 소개하고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자랑'을 늘어놓는 등 뉘우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아 공분을 사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르파리지앵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카를로스는 1974년 파리 도심 카르티에 라탱 지구에서 수류탄을 던져 2명을 숨지게 하고 34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파리 테러특별법정에 13일 출석했다.
올해 67세인 그는 반백에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검정색 재킷에 붉은색 손수건 장식까지 하는 등 한껏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얼굴에는 웃음을 띤 채 자신의 연인이자 변호사인 이자벨 쿠탕페르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취재진에게도 손 키스를 날렸다.
재판장이 직업을 묻자 그는 "프로페셔널 혁명가"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후회는 없느냐는 질문에는 "후회는 한다. 나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죽여야 할 사람들을 죽이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폭력이 뭔지 잘 안다. 폭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많은 살인을 봐왔다"고 덧붙였다.
카를로스는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살인청부업자에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로 변신한 인물이다. 본명은 일리히 라미레스 산체스이지만 '카를로스 더 자칼'이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신출귀몰하게 도망 다닌다고 해서 당시 언론들이 첩보소설의 거장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작품 주인공 이름을 붙여줬다.
그는 1970∼80년대 유럽 각지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장하며 각종 테러를 일으키다가 수단에서 1994년 프랑스 정보요원들에게 체포돼 프랑스로 압송됐다.
그의 변호사이자 연인인 이자벨 쿠탕페르는 법정에서 "목격자 중에 카를로스와 닮은 사람을 본 사람이 없다"면서 "모든 게 조작"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2001년 카를로스와 이슬람교 방식으로 결혼식까지 올린 이 변호사는 이번 재판에 대해 시간과 돈 낭비라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재판을 열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카를로스를 법정에 세우기까지 43년을 기다려야 했다. 희생자 유족을 대리하는 변호인 측은 "유족들은 카를로스가 법정에 서기를 매우 오랜 기간 고대해왔다. 그들의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카를로스 측의 무죄 주장과 변호인의 법정을 모독하는 발언 말고도 카를로스의 뻔뻔함에 유족들은 치를 떨어야 했다.
카를로스는 급박한 상황과 마주쳤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고 판사가 묻자 카를로스는 "현장을 한번 슥 본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총을) 쏜다. 나는 인정사정없다.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다"며 자신이 '타고난 킬러'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카를로스는 이미 1982년과 1983년 파리와 마르세유 등지에서 폭탄테러 등을 주도해 11명을 숨지게 하고 150여 명을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는 법정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서 나보다 더 많이 사람을 죽인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내가 유일한 생존자다. 모든 투쟁에서는 불행하게도 부수적으로 희생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조직은 1천500명, 자신은 그중 80명을 죽였다고 '자랑'을 늘어놓으면서도 그는 "폭력이 싫다"고 말했다.
카를로스를 기소한 레미 크로송 뒤 코르미에 검사는 법정에서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테러리즘이라는 두 개의 적이 있다. 카를로스는 바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물"이라며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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