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 쪼개졌던 美, 고어 '아름다운 승복'으로 통합
연방대법원 '재검표 중단' 명령수용…"미국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
(워싱턴=연합뉴스) 이승우 특파원 = "개인적으론 동의 못 하지만 연방대법원 판결을 수용합니다. 우리의 실망은 미국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돼야 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접전으로 기록된 2000년 대선에서 무려 36일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법적 다툼을 벌였던 앨 고어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는 결국 연방대법원의 재검표 중단 판결 이후 승복 연설을 통해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특히 그는 "지금은 서로의 차이를 얘기하며 분열하기보다는 화합이 더 절실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때"라며 국민 통합과 화합을 거듭 촉구해 갈채를 받았다.
고어 후보의 승복 연설은 이후 미국 민주주의의 강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당시 미 현지 언론들은 고어의 승복을 일제히 "미국의 승리"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고어의 승복 사례는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상당한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만에 하나 박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정치적으로' 불복한다면 우리사회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의 '아노미' 상태로 휩쓸려 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17년 전 고어 역시 스스로 말했듯 '억울한' 측면이 적지 않았다.
당시 개표 결과 고어는 전국 투표에선 54만 표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266대 271로 근소하게 밀렸다. 하지만 문제는 고어가 부시에게 단 537표로 패한 플로리다(선거인단 수 25명)에서 재검표를 한 결과 고어의 표가 상당수 무효 처리된 사실이 발견되면서부터 일어났다.
이에 따라 주 전체에서 재검표를 하면 결과가 뒤집혀 고어가 당선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고어 측은 재검표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부시 측은 "재검표 법정 시한을 지났다"고 맞섰다.
양측은 소송전을 이어갔고 미국 여론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로 양분됐다. 정치권의 갈등과 행정 공백은 금융 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결국 연방대법원이 5 대 4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재검표 결정을 내렸던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결정을 뒤집고 재검표 중단 명령을 내리자, 민주당과 일부 진보 진영은 불복까지 요구했으나 결국 고어는 고심 끝에 갈등을 봉합하는 쪽을 택했다.
본인의 정치적 입지보다 국민 화합이라는 '대의(大義)'를 택한 것이다.
1960년 대선에서 존 F. 케네디 민주당 후보에 석패한 리처드 M. 닉슨 공화당 후보도 한 차례의 재개표 끝에 패배를 깨끗이 인정한 바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 지지자 일부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불복을 요구했지만, 그는 조기 승복을 택함으로써 국론 분열을 막았다.
반면 한 쪽에서 상대 진영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라 전체가 파국을 맞은 적도 있었다.
지난 1860년 대선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공화당 후보는 노예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제16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남부 백인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고, 이는 결국 역사적으로 유명한 '남북 전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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