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제정신아니다" 연일 성토하는 말레이…北교민 '불안·동요'
나집 총리, 취임 8년만에 첫 긴급 NSC 소집…"北억류 국민 귀환 위해 모든 조치"
말레이, '불법 외화벌이' 북한인 37명 체포…"北근로자들 귀국·3국행 희망"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북한이 김정남 피살사건 수사에 불만을 품고 자국에 있는 말레이시아인들의 출국을 금지, 사실상 인질로 잡는 극단적인 조치를 하자 말레이시아에서 반북 정서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단교 문제까지 거론될 정도로 양국 관계가 국교 수립 44년 만에 파탄 위기를 맞은 가운데 북한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유례없이 커지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자국 내 북한인의 출국 금지로 맞불을 놓고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까지 벌이자 주로 외화벌이 일꾼인 현지 북한인들은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에 떠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7일 북한이 자국민을 억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도네시아 방문 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 국가안보보장회의(NSC) 긴급회의를 소집해 강경 대응을 공언했다.
8일 일간 더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1971년 설치된 NSC는 국가안보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나집 총리가 긴급회의를 연 것은 2009년 총리 취임 이후 처음이다.
나집 총리는 "사실상 우리 국민을 인질로 잡는 행위는 국제법과 외교규범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것"이라며 북한을 강하게 비난하고 "그들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 모든 일을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카이리 자말루딘 청소년체육장관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출금 조치의 즉각 해제를 북한에 촉구했다.
말레이시아화교연합회(MCA)의 총신우 청년대표는 "북한이 주제넘게 우리 시민을 인질로 잡았다"며 "말레이시아인들은 단합해 북한의 압제적 행동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기자가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50대 우버 운전기사는 "북한 정권이 제정신이 아니다"며 "우리 국민을 억류한 데서 보듯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불허"라고 고개를 저었다.
소셜미디어에는 "깡패국가가 그런 조치를 할 것으로 예상한 만큼 말레이는 국제 규범과 법에 따라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북한의 괴롭힘에 굴복하지 말고 말레이시아가 단합해야 한다"는 주장과 북한을 비난하면서도 아직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협상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는 목소리 등 여러 의견이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이용해 중국을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케방사안말레이시아대학의 수피안 주소 교수는 "말레이시아와 북한 간에 대화채널이 아직 열려있다"며 대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이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아즈민 하산은 "이번 사태를 유엔으로 가져갈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한 북한은 국제기구의 압력을 무시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중국 역할론을 제기했다.
김정남 사건으로 양국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 일로를 걸자 말레이시아에 있는 북한 교민들 사이에는 불안과 동요가 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1천여 명의 북한인이 말레이시아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외화벌이 일꾼으로, 탄광, 건설 현장, 식당 등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스타는 북한 교민사회가 흔들리고 있다며 말레이시아 남부 조호르 주에 있는 북한 근로자들이 귀국이나 제3국행을 원한다고 전했다.
현지에 있는 한 한국인 엔지니어는 익명으로 "북한인 친구가 다른 나라로 갈려고 준비 중"이라며 "그의 부인과 딸이 이곳에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라왁 주에서는 7일 북한 근로자 37명이 불법 체류 혐의로 현지 이민국과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말레이시아 거주 북한인들의 불안감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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