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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代가 독립운동'…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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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代가 독립운동'…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

할아버지·아버지 본받아 10대 초부터 만주서 독립운동

"나라없는 설움 커…주변국에서 얕보지 못하게 힘 키워야"

(수원=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제98주년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후 경기 수원시 보훈복지타운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오희옥(91·여) 지사는 '푸른 하늘 은하수'로 잘 알려진 동요(원제는 반달)를 막힘없이 끝까지 불렀다.

중국 류저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한 76년 전 14살 나이에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극단에서 불렀던 이 노래를 그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오 지사는 이때 일본군 정보수집과 한국인 사병 탈출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오 지사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해서 입장료를 받으면 중국군에 반을 떼어 주고 나머지 반을 독립군 자금으로 사용했었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뼛속 깊이 독립운동가이다. 가족 3대가 경기 용인에 고향을 둔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은 일본강점기 의병활동에 앞장섰다. 당시 대한민국 1등 명포수였던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사냥으로 가족을 부양했다.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 잡힌 할아버지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8년간 고된 감옥살이를 하고 나서 아들과 손주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당시 오 지사와 2살 터울의 언니 오희영 지사는 10살쯤 되는 꽃다운 자매였고, 어머니의 뱃속에는 남동생이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 오광선 독립운동가는 1915년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를 거쳐 대한독립군단으로 활약했다.

이후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특명에 따라 북경에 비밀거점을 마련하고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본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만주에 온 오 지사의 어머니는 하루에 밥을 열두 가마씩 손수 지어 독립군 뒷바라지를 했다.

오 지사는 "어머니는 기골이 장대하고 의지가 굳은 여장군이었다"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독립운동을 하시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독립운동의 길로 이끈 백범 김구 선생과 지청천 장군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매일 같이 보면서 자란 오 지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오 지사는 "나라가 없는 아이라고 중국 아이들에게 놀림과 설움도 많이 당했다"면서 "그 설움이 너무 컸다. 그때마다 반드시 나라를 되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해방되고 나서 인천에서 상봉한 오 지사의 가족은 6·25전쟁까지 겪으면서 험난한 삶을 살았다.

온 가족이 독립을 위해 헌신한 가족들이었지만 그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평가하는 일을 했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은 언니와 형부만 독립운동 공로자로 이름을 올렸다.

오 지사와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부러 제외했다고 했다. 온 가족을 다 공로자로 올리면 남들이 욕한다는 이유에서다.

오 지사는 "아버지가 너무도 정직한 분이셨다. 그런 분이 정당한 평가를 받아서 정부를 위해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오지사도 1990년이 되어서야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김구 선생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건국 시 배제된 것이 친일파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오 지사는 "지금도 친일파들은 대대손손 호의호식하면서 잘 사는데, 진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제대로 된 평가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고령에도 현재 국내외 정세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반성과 사과 없이 소녀상 설치와 독도 영토 도발을 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그 할아버지가 한국을 침략하더니 그 손자까지 그 모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김정남 암살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중국과의 갈등을 언급하면서 "나라가 힘이 약해서 그렇다. 스스로 힘을 키워 주변 나라에서 옛날처럼 넘보지 못하게 강한 나라를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 지사는 인터뷰 말미에 "이젠 고향인 용인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내비쳤다.

그는 "TV에서 보니까 가난한 사람 찾아가 집도 지어주고, 청년들에게 싼 집도 마련해 주던데,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도 고향에서 살만한 조그만 집이라도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슬하에 아들 둘, 딸 하나를 두고 있으며, 수원 보훈복지타운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용인시는 3·1절을 기념해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기리는 카드뉴스를 만들어 용인시 블로그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3대째 독립운동을 한 오희옥 지사의 가족이 첫 번째다.

hedgeho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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