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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국민 46만명] ⑤무적자 '유령국민'·돈 먹는 '서류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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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국민 46만명] ⑤무적자 '유령국민'·돈 먹는 '서류국민'

허술한 인구행정, 기본권 잃은 채 조국 땅 떠도는 '무적자' 방치

허위 출생신고로 혈세 빼먹고, 죽은 사람 내세워 복지혜택 누리기도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허술한 인구 행정은 엄연히 살아있는 국민이 없는 사람 취급받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국민 대접을 받는 황당한 사태를 부르기도 한다.

이 사태 속에서 헌법이 규정하는 국민의 기본권은 설 자리를 잃고 혈세는 엉뚱한 주머니로 들어간다.

비록 사례가 많지는 않다 하더라도 결코 있어서는 안될 참담한 경우들이 당국의 무관심 속에 되풀이되고 있다.



◇ 한국인이지만 한국민 아닌 '무적자'

1923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김모(94·여)씨는 3살 때 아버지가 숨지고 어머니는 곧바로 재가해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부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던 터라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김씨는 1940년 결혼했지만, 호적상 신분이 없어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다가 남편마저 일찍 사망하면서 고향에서 홀로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이후 재가한 어머니가 낳은 의붓남동생의 도움으로 1960년부터 남동생의 이복누나인 손모씨 행세를 하며 50여년을 살았다. 손씨는 1960년 이전에 사망했지만, 호적이 말소되지 않은 상태여서 김씨의 손씨 행세가 가능했다.

지난해 뇌출혈 등으로 건강이 악화해 병원에 입원한 김씨는 죽기 전에 자신의 진짜 신분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법원에 성(姓)·본(本) 창설(성씨와 본관을 부여받는 것) 신청을 냈다.

법원은 '한양 김씨'라는 새로운 성과 본을 만들어도 된다고 허락했고 김씨는 90여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을 갖게 됐다.

주민등록이나 호적·가족관계등록 등 공식적 신분이 없는 '무적자'(無籍者)는 신분이 없기 때문에 선거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 땅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지만 국민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유령국민'인 셈이다.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사망자로 처리돼 무적자와 같은 처지에 놓인 유령국민도 있다.

노숙인이던 오모(67·여)씨는 2013년 수도권의 한 노숙인지원센터에 입소할 당시 사망자로 등록돼있다가 센터의 도움을 받아 신원을 회복했다.

법률구조공단에 접수된 무적자의 성·본 또는 가족관계등록 창설 신청은 2014년 92건, 2015년 113건, 지난해 86건으로 최근 3년만 봐도 291건에 달한다. 오씨 같은 사례까지 더하면 그 이상의 유령국민이 이 땅을 떠돌고 있다.




◇ 낳지도 않은 아이·숨진 어머니 내세워 나랏돈 챙겨

부동산 중개업자 안모(62)씨는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부동산 열기가 뜨겁던 2007년 다자녀 가정에 특별공급하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서류상 자녀를 만들어 냈다.

이미 자녀 셋을 뒀지만, 그해부터 2년 사이 두 명을 더 낳았다고 허위로 출생신고했다.

병원에서 발급하는 출생증명서 없이 보증인을 내세워 출생신고할 수 있는 인우보증제를 악용한 사례로 안씨는 자신의 부모를 보증인으로 내세웠다.

서류상 자녀를 통해 안씨는 수도권 등 5곳의 아파트를 분양받고 양육보조금 1천800만원도 챙겼다.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의 사망 사실을 숨긴 채 억대의 나랏돈을 빼간 경우도 있다.

이모(70)씨는 전몰군경 유족으로서 보훈급여를 받던 어머니가 2004년 사망했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고 지난해까지 11년간 1억6천여만원의 보훈급여를 받아 챙겼다.

서류에만 존재하는 '서류국민'을 내세운 이러한 범죄는 매년 반복된다.

인우보증제는 허위 출생신고 외에도 전과자의 신분세탁, 외국인의 불법 국적 취득 등 수많은 악용 사례에도 수십 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키다 지난해 말에야 폐지됐다.

그전에 만들어진 서류국민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길이 없고 이들 서류국민이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은 크기만 하다.

매년 서류상 생존한 사망자 앞으로 부정하게 지급된 나랏돈은 보훈급여 외에도 연금, 기초생활수급비 등 종류도 다양하다.




◇ "신고에 의존하는 인구행정 보완해야"

법률구조공단은 수년전까지 무적자 측의 신청이 아닌 무적자를 직접 찾아 성·본 또는 가족관계등록 창설 등 신분을 만들어주는 '무적자 기획소송'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기획소송은 2010년에는 176건, 2011년에는 100건, 2012년에는 132건으로 무적자 측의 신청을 포함한 전체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그러나 2013년 60건으로 대폭 줄더니 이듬해 39건, 2015년에는 18건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도 22건에 그쳤다.

법률구조공단은 "가족관계등록부의 전산화로 새로 발생하는 무적자 사건이 드물고 기존 무적자 문제는 관계기관 연계 등을 통해 상당 부분 발굴됐다"고 기획소송이 많이 줄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무적자 측의 신청까지 포함한 전체 소송 건수는 2013년 195건, 2014년 131건, 2015년 131건, 지난해 108건으로 나타나 큰 차이가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사망신고가 접수되지 않더라도 사망한 것으로 의심되는 복지급여 대상자에게는 급여지급을 중지하고 있지만, 복지급여 부정수급 사례는 매년 발생하고 있다.

박유성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는 "현재 주민등록 업무를 비롯한 인구관련 행정은 신고에 의존하고 있어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사각지대에 놓이는 무적자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확하고 엄격한 현장조사 등 한층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zorb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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