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용산고개 학살피해 두번째 발굴 "최소 27명 희생"
카빈 소총·45구경 권총도 나와…"군·경 확인사살 가능성"
(진주=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한국전쟁 때 발생한 보도연맹사건과 관련한 경남 진주 용산고개 2차 발굴조사에서도 희생자들 유해와 유품이 다수 발굴됐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 민간인 희생 추정 현장을 발굴한 결과 최소 27명의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28일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매장지의 습도와 산성도가 높아 유해 보존상태는 매우 나빴으며 유해와 함께 안경·버클·탄두·단추·고무줄 등 총 31점의 유품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매장지에서 발견된 단추 종류가 다양한 점과 유족 증언들을 종합한 결과 희생자들 다수가 재소자가 아닌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희생자'들로 공동조사단은 판단했다.
특히 카빈소총과 45구경 권총, M1 소총 탄두가 나온 것으로 미뤄 당시 경찰과 국군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조사단은 보고 있다.
공동조사단은 45구경 소총은 유효 사거리가 짧아 일부 희생자는 확인 사살됐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는 '고(高)' 자와 '조선체육회·1934년'이라고 적힌 버클도 나왔다.
금이나 은, 청동을 재료로 한 보철도 나와 희생자들이 사회적 신분이 있는 사람들로 추측됐다.
유해가 지표에서 30∼50㎝ 깊이 땅속에서 발굴돼 당시 사살된 희생자들이 제대로 매장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조사단은 미발굴 유해가 더 있는지 파악하고 유해 발굴지를 교육장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동조사단은 앞서 2014년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이곳에서 발굴조사를 벌였다. 이곳에서만 두 번째 발굴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곳이 진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용산고개 3개 골짜기 다섯 군데에 718구의 시신이 매장됐다는 주민과 유족들의 증언에 따라 공동조사단이 다시 조사를 벌였다.
1차 조사에서 최소 39명의 유해와 카빈소총 탄두, 탄피, 버클 등 유품을 발굴했다.
이번에 발견한 45구경 권총, M1 소총 탄두는 1차 조사지점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이번 발굴조사지역은 1차 발굴지에서 20여m 떨어진 곳이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4일 개토제에 이어 유해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공동조사단은 한국전쟁유족회, 4.9 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 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 특별법제정시민 행동 등 시민단체들이 모여 2014년 출범했다.
공동조사단은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야산에서 2차, 3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인 바 있다.
진주 용산고개 발굴현장은 한국전쟁 때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와 민간인 수백 명이 국군방첩대와 경찰에 의해 집단학살돼 묻힌 곳으로 알려졌다.
박선주 발굴단장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은 지금도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전국 곳곳에 방치돼 있다"라며 "이번 유해발굴조사는 과거청산 작업의 하나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안치하고, 실질적인 과거청산에 필요한 법과 제도가 구비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려고 진행했다"라고 말했다.
shch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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