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잔치' 오명 벗은 오스카…흑인배우상·작품상에 무슬림까지
흑인배우, 남녀조연상…'문라이트'로 작품상 번복된 해프닝이 '화룡점정'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오스카의 절반이 검게 물들었다. 그동안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미국 아카데미상이 올해는 배우상 트로피 4개를 흑인·백인 후보에게 절반씩 건넸다. 최근 2년 연속 배우상 수상자는 물론 후보 20명에 흑인을 단 한 명도 올리지 않아 '#OscarSoWhite'(오스카는 너무 하얗다)라는 비아냥을 들은 아카데미다.
26일(현지시간) 열린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전 부문을 통틀어 첫 시상인 남우조연상부터 심상치 않았다. '문라이트'에서 주인공 샤이론의 친구이자 아버지 같은 인물 후안 역을 연기한 마허셜라 알리가 호명됐다. 알리는 아카데미 89년 역사상 처음 배우상을 받은 무슬림이리는 기록도 세웠다.
이어 여우조연상은 덴절 워싱턴이 연출한 '펜스'의 비올라 데이비스가 니콜 키드먼('라이언')과 나오미 해리스('문라이트') 등을 제치고 차지했다. 데이비스는 흑인 여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후보에 세 차례 올랐고, 지난달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아카데미 수상도 유력시됐다.
초반부터 흑인 배우들의 돌풍이 거셌지만 주연상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펜스'의 덴절 워싱턴, '러빙'의 루스 네이가가 각각 남여 주연상 수상을 노렸으나 케이시 애플렉('맨체스터 바이 더 씨')과 에마 스톤('라라랜드')이 워낙 강력한 후보였다. 다만 케이시 애플렉은 2010년 영화 여성 스태프 두명을 성희롱했다가 고소당한 사건으로 수상이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있었으나 수상자로 호명됐다.
지난달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흑인 배우 6명을 포함한 배우상 후보 20명을 발표하자 실제 수상으로 이어질지 이목이 집중됐다. 흑인 수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면 '구색 맞추기'로 흑인 배우들을 후보 명단에 끼워넣었다는 비판을 받을 만했다.
"트럼프 대통령께 감사드린다. 작년에 오스카상이 인종차별적으로 보였던 것 기억하느냐? 그게 올해는 사라졌다." 사회자 지미 키멀의 말처럼 올해 아카데미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낸 데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도 적잖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카데미의 정치적 메시지는 마지막 순서 작품상 시상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번 아카데미상은 백인 남녀의 희망과 사랑을 그린 '라라랜드'의 우세 속에 흑인 게이 소년의 절망과 좌절을 담은 '문라이트'가 도전장을 내민 모양새였다. 라라랜드는 모든 면에서 아카데미에 대한 편견에 딱 들어맞는 영화였고 그래서 더욱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워렌 비티가 '라라랜드'를 작품상 수상작으로 발표할 때만 해도 이날 시상식은 흑인 배우를 적절히 안배하는 수준에서 라라랜드의 7관왕 독식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라라랜드 제작진이 수상소감까지 말한 다음 수상작이 '문라이트'로 번복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인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영화에서, 보고 있자면 적잖이 불편한 영화로 수상작이 바뀐 건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던졌다.
'문라이트'는 이날 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전세계에서 160개 넘는 상을 휩쓰는 기록을 세웠지만 지난해 개봉한 미국 영화 중 박스오피스에서 100위 안에 들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22일 개봉 이후 닷새 동안 관객 수는 4만 명을 겨우 넘었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라라랜드'를 본 한국 관객은 '문라이트'의 80배가 넘는 330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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