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페이스 페인팅으로 남성팬으로 위장
SNS에 '인증샷' 올려 체포되기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축구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이란은 아시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27위)가 가장 높은 나라로, 전통적인 한국의 난적이다. 이란 축구의 성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한국은 42년간 한 번도 이란을 이기지 못했다.
이란 프로축구리그는 유럽 못지않게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 축구 경기장과 다른 점은 여성이 입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비단 축구 뿐 아니라 이란에서 남성 스포츠 경기장에 여성이 입장하면 체포돼 처벌받을 수 있다.
2014년엔 남자 배구 경기장에 들어가려던 영국계 이란 여성 변호사가 체포돼 징역형을 받았다.
그런데도 워낙 축구 인기가 뜨겁다 보니 체포 위험을 불사하고 축구장에 잠입하는 '용감한' 열혈 소녀 팬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성별을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얼굴에 진한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가발이나 모자를 써 변장해 경찰의 눈을 속인다.
또 경기 시작 수시간 전 오전 일찍 경기장에 도착해 경계가 허술한 틈을 노린다고 한다.
조용히 경기를 보고 퇴장하면 '완전 범죄'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는 '인증샷' 또는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SNS)에 올려 과시하다가 이를 추적한 경찰에 체포되기도 한다.
이달 12일 이란 축구 최대 경기인 '테헤란 더비'에 입장한 소녀팬 8명이 SNS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 경찰에 체포됐다.
여성 축구팬이 SNS에 축구장에 입장했다는 글을 올리면 "증거를 대보라"면서 인증샷을 올리라고 부추기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곤 한다.
여성 입장 금지에 대한 이란 정부나 종교계는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 이란 현지인들이 생각하는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다수론'의 한 가지는 여성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남녀가 관중석에 섞이면 과열된 남성들이 여성에게 성적으로 모욕하는 욕설이나 성추행을 범할 우려가 있고, 심한 경우 여성이 폭행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남성만 모인 축구 경기장에 가보면 '진한' 욕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예 여성 입장을 금지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여성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 축구장 입장을 금지한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여성 전용석을 마련하는 대안도 제기되지만 이 역시 남자 관중석에서 위험한 물건이 날아올 것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이란의 한 남성 축구팬은 "축구장에 남자들만 있어도 경기에 흥분한 관중 사이에서 여러 사건이 벌어지는 판에 여성이 있다면 더 큰 일이 나지 않겠느냐"며 "여성 입장을 허용하려면 남성에게 관람 규칙을 먼저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의 측면에서 보자면 여성이 낯선 남성과 공공장소에서 무작위로 접촉해선 안 된다는 이유가 대체로 꼽힌다.
남자 배구의 경우 종종 여성이 격리된 관중석으로 입장하곤 하는데 이는 선수의 가족이나 고위급 인사로 제한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온라인에서는 이란 여성 인권단체들이 입장을 허용하라는 캠페인을 펴는가 하면 경기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곤 한다.
이란에서 여성이 남성 스포츠를 관람하지 못하는 정책은 국제 인권단체와 스포츠 기구에서 줄기차게 비판받아 왔으나 이란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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