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결산] ④ 올림픽 유산 재활용 눈길…대회 운영은 아쉬움
삿포로 경기장 12곳 중 7곳이 1972년 올림픽 시설 그대로 활용
관리 잘 돼 있지만, 관중 서비스는 불합격…아파 호텔 논란 '오점'
(삿포로=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아이스하키 종목 주 경기장인 쓰키사무 체육관은 휴식시간이 되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관중들이 일제히 복도로 나와 마치 자석에 끌린 듯 복도 벽에 몸을 밀착해 서 있거나 기대앉아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난방 시설인 라디에이터가 복도 벽을 따라 길게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관중들은 경기가 다시 시작할 무렵에야 아쉬운 듯 복도 벽에서 천천히 몸을 떼고 관중석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쓰키사무 체육관은 아시아 최초의 동계올림픽인 1972년 삿포로 대회 당시 개장해 아이스하키 경기장으로 사용됐다.
이후로도 1986년과 1990년, 그리고 올해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아이스하키 토너먼트가 이곳에서 열렸다.
한국·일본·중국의 연합리그인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도 크리스마스 연휴를 전후로 정규시즌 몇 경기를 이곳에서 치른다.
일본 아이스하키 2부 리그 팀인 '스케이트 하우스'의 홈 구장이기도 하다.
쓰키사무 체육관은 45년의 세월에도 방치되지 않고 쉼 없이 활용된 덕분에 파손되거나 지저분한 곳 하나 없이 관리가 잘 돼 있다.
하지만 경기장이 워낙 오래된 탓에 빛바랜 사진 같은 느낌에다 난방도 시원치 않다. 관중들이 가득 들어찰 때는 다소 덜한 편이지만 빈 곳이 많을 때는 추워서 입김이 나올 정도다.
요즘 지어진 아이스하키장 경기장과는 큰 차이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최신식 경기장은 관중들이 반소매를 입고도 관전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난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스코어, 경기 시간, 골·어시스트 기록 선수의 등번호와 함께 간략하게 경기 상황을 문자로 보여주는 옛날식 전광판도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당연히 리플레이 영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쓰키사무 체육관뿐 아니다. 삿포로에 있는 동계아시안게임 공식 경기장 12곳 중 절반이 넘는 7곳이 1972년 올림픽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1972년 올림픽의 유산을 45년이 흐른 지금까지 재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이후의 시설 활용법을 고민하는 한국의 평창에 삿포로는 친절한 교과서와도 같다.
하지만 아무리 유지·관리가 잘 돼 있다고 해도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난방문제도 그렇지만 협소한 관중석, 복잡한 동선 등이 관중 친화형으로 지어진 현대식 경기장과 견주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삿포로시가 2026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두 팔을 걷어붙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시 자체 예산만으로 경기장 신축과 개보수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동계올림픽 유치를 통해 중앙 정부의 예산을 끌어오고 싶은 것이다.
삿포로시는 저예산으로 이번 대회를 치르고 있다. 기존 시설을 그대로 활용하면 되니 돈이 들 곳도 많지 않다.
마치 국내대회 치르듯이 이번 동계아시안게임을 대해서인지 대회 운영에서 느슨한 측면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아파(APA) 호텔 논란이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위안부 강제동원과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은 극우성향의 책들이 객실에 비치된 아파 호텔을 선수단 공식 숙소로 지정해 공분을 샀다.
발끈한 중국은 숙소를 옮기는 한편 자국 여행업체들에까지 아파 호텔을 이용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한국도 중국의 뒤를 이어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손님을 초대하면서 세심한 검토 없이 선수단 숙소를 정한 대회 조직위의 무신경이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다만 자원봉사자들의 투철한 봉사 정신은 이러한 결점을 메우고도 남았다.
청년부터 노년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은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자세 한 번 흐트러지는 법 없이 어떠한 요구에도 친절하게 응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처럼 자원봉사자들이 안내는 뒷전이고 휴대전화를 보며 수다를 떨거나 조는 모습은 삿포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1972년 올림픽 유산을 45년 동안이나 그대로 사용하는 것 못지않게 놀라운 삿포로의 저력이었다.
chang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