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 이상 기부금 공개, 재계 확산 움직임(종합)
삼성전자·SK, 이사회 의결 의무화 안건 속속 통과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김영현 기자 =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으로 최근 큰 홍역을 치른 재계에서 기부금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사회가 일정액 이상의 외부 기부금을 감시하게 해 '최순실 게이트' 같은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삼성전자[005930]는 24일 오전 수원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10억원이 넘는 기부금이나 후원금, 출연금 등을 낼 때는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사외이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사회 의결을 의무화함으로써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준법경영을 강화하는 조치라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자기자본의 0.5%(약 6천800억원) 이상인 경우에만 이사회에서 집행 여부를 결정했다. 다만 삼성복지재단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기부금은 50억 원 이상일 때 이사회를 거쳤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이사회에서 결정한 모든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에 대해 금융감독원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할 방침이다.
또한 분기별로 발간하는 사업보고서와 매년 발행하는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에도 관련 내용을 게재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또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에 대한 사전 심사를 강화하기 위해 '심의회의'도 신설한다.
법무를 비롯해 재무, 인사, 커뮤니케이션 부서의 팀장이 참여하는 심의회의는 매주 한 번씩 모여 심사를 진행한다.
1천만원 이상의 모든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이 심의 대상이다. 심의회의에서 지원이 결정된 경우에만 이사회에 회부된다.
기부금 등의 운영과 집행결과에 대한 점검도 강화된다.
모든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의 운영 현황과 집행결과는 분기에 한번씩 심의회의와 이사회 산하 감사위원회에서 점검할 계획이다.
삼성그룹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에서 도입한 이번 조치는 다른 계열사들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이날 SK그룹도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10억원이 넘는 후원금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집행하고, 이를 외부에 공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SK텔레콤[017670]과 SK하이닉스[000660]는 지난 23일과 22일 이사회에서 10억원 이상 기부금이나 후원금, 출연금 등을 낼 때 이사회 의결을 의무화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기존에는 외부 기부의 경우 경영상 중요한 안건만 이사회 의결을 거쳤지만 앞으로는 10억원 이상으로 금액 한도를 명확하게 규정하기로 정관을 개정한 것이다.
SK의 주요 계열사인 텔레콤과 하이닉스가 이 같은 정관을 마련함에 따라 나머지 계열사도 차례로 같은 절차를 밟아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텔레콤 등을 시작으로 SK계열사 대부분이 '10억원 이상 이사회 의결' 안을 마련할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긴급 재난 구호나 사회복지 관련 기부는 사후에 이사회에 보고할 수 있도록 예외로 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과 SK가 물꼬를 튼 이 같은 움직임은 재계 전반적으로 더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대기업도 삼성 등과 마찬가지로 '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을 겪으면서 기부금 운용을 투명하게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한편, 미르·K스포츠 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53개 기업 가운데 출연 사실을 이사회에 보고하는 등 정식 절차를 밟은 기업은 5곳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5곳 가운데 이사회 결의 절차까지 완료한 곳은 이와 관련한 정관 규정이 까다로운 KT와 포스코 단 2곳에 불과했다.
포스코는 이미 이사회 운영 규정에 10억원 초과의 기부·찬조는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정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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