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평화헌법은 무의식의 산물…개헌 시도는 헛일"
가라타니 고진 '헌법의 무의식'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개헌은 2012년 12월부터 집권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거듭 강조하는 정치적 현안이다. 그는 올해 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헌법 시행 70년이라는 한 단락을 맞이했다"며 헌법 개정안을 국회가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베 총리와 여당인 자민당이 말하는 헌법 개정에서 핵심이 되는 조항은 9조다. 일본 헌법 9조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방기(放棄)한다."는 1항과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은 보지(保持)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2항으로 구성된다.
일본을 전쟁할 수 없는 나라로 규정한 이 조항은 이른바 '평화헌법'의 근간이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개헌은 무엇보다도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사상가이자 문예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신간 '헌법의 무의식'(도서출판b 펴냄)에서 "헌법 9조가 일본에서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일본 헌법을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산물로 보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반영돼 나타나는 꿈을 조작할 수 없는 것처럼 헌법 9조도 의식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학설을 통해 일본 헌법의 생성 과정을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저서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에서 "충동단념은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된 것이고, 충동의 단념이 비로소 윤리성을 낳으며, 이것이 양심이라는 형태로 표현돼 충동의 단념을 다시 요구한다"고 썼다. 여기에서 충동을 전쟁, 외부를 미국으로 각각 바꾸면 저자가 주장하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는 현행 헌법이 시행된 직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 총리가 미국이 제안한 재군비를 거절했고, 역대 선거에서 헌법 9조가 주된 쟁점이 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지난 70년간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줄곧 있었지만,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헌법이 무의식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헌법 9조가 일본인의 깊은 반성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하면서 "일본 사람의 무의식에는 전쟁에 대한 죄악감이 있고, 헌법 9조는 일본인의 초자아이자 '문화'"라고 말한다.
이 같은 시각을 견지하면 일본에서 펼쳐지고 있는 개헌파와 호헌파의 논쟁은 모두 헛일이다. 또 국민을 상대로 교육과 홍보 활동을 벌여도 개헌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본에 필요한 것은 개헌이 아니라 오히려 헌법 9조를 조항 그대로 지키는 엄밀성이라고 강조한다.
"형태상으로만 9조를 지키는 것이라면 9조가 있어도 무엇이든 가능한 체제가 돼버린다. 호헌파의 과제는 앞으로 9조를 문자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조영일 옮김. 206쪽. 1만8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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