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에도 北-동남아 전통적 우호관계 유지될까
FT, 밀월관계 조명…대북제재에도 경제거래 유지
암살 탓 기존관계 불안…"또 북한 뒤처리" 울분도 목격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김정남 암살사건이 동남아시아에서 공분을 사면서 그 배후로 지목된 북한이 이 지역에서 전통적 우호관계를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김정남 피살이 북한과 말레이시아 사이의 거센 외교적 다툼을 야기했다며 북한과 동남아 국가들이 40년 넘게 지속해온 밀월관계를 20일(현지시간) 집중 조명했다.
신문에 따르면 동남아는 핵무기 개발에 따른 국제 제재로 고립무원 처지에 있었던 북한에 '숨구멍'과 같은 지역이었다.
특히 김정남이 암살된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등은 북한에 적대적인 서방 국가와 달리 김일성 주석 때부터 이어온 북한과의 친분을 중요시해왔다.
북한도 자국에 우호적인 동남아를 해외 활동 거점으로 삼아 외화벌이를 해왔다.
일례로 북한 최고 예술가 단체인 만수대창작사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 옆에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을 건설한 후 내부에서 북한 미술 작품을 팔아 수익을 내왔다.
또 북한 정부도 옥류관 등 북한 음식점을 체인점 형태로 동남아에서 운영하고, 미얀마 군부정권에 재래식 무기를 팔며 외화를 챙겼다.
북한과 친분을 유지하다 제재를 당한 동남아 국가도 있다.
싱가포르의 '진포해운'은 북한에 불법무기를 운송해 유엔 대북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작년 18만 싱가포르달러(약 1억5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중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중에서 북한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나라다.
지난 1973년 북한과 수교한 말레이시아는 양국 국민의 입국에 비자가 필요 없는 비자면제협정을 북한과 유일하게 체결한 국가다.
또 북한은 고무·팜유 등을, 말레이시아는 철광석·아연 등을 수입하는 등 양국 간 교역도 활발하다. 또 80명가량의 북한인이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에서 건설·광산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특히 북한은 대북제재로 수출길이 막히자 관광산업을 새로운 외화획득원으로 정하고 말레이시아에 본부를 차려 동남아와 인도 관광객 유치에 나서기로 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이재현 선임연구위원은 FT에 "1960∼70년대 북한은 공산주의 정권과 말레이시아 등 비동맹국과 아주 가까웠다"며 "말레이시아는 북한 개방 후의 경제적 이득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밀월관계는 김정남 암살이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북한이 김정남의 부검을 막는 등 말레이시아 법규를 무시하고, 말레이가 북한 비판 세력과 결탁했다는 등의 모독 발언을 일삼자 말레이 정부는 강철 북한대사를 초치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섰다.
말레이 정부가 이와 더불어 평양에 있는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는 이례적인 '강수'를 취하자 양국 간 갈등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국민까지 이번 암살작전에 동원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북한에 대한 이런 반감이 동남아 전체로 확산할 수 있는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듯 동남아 언론들도 북한에 일제히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태국 언론 방콕포스트는 이날 '용납할 수 없는 북한'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다시 한 번 동남아에서 긴장과 분노를 유발했다"며 "이번에는 말레이시아에 피를 뿌렸고 김정남 살해는 단순한 외교 사안을 초월한 사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 왕조의 형제, 왕족 살해는 평양 안에서 일어나는 한에서 용납되거나 조심스럽게 다뤄져 왔다"며 "이제 그 범죄가 해외까지 뻗쳐서 또다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이 김씨 3대 세습자의 살인범들이 자행한 그 더럽고, 피비린내 나고 야만적인 범죄의 뒤처리를 해야 할 판"이라고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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