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갇혀 보름째 고립생활"…구제역에 보은 주민들 '고통'
삼엄한 경계, 바깥 출입 못해…경로당 폐쇄돼 노인들 '발동동'
당국 "이번 주 소독 총력전"…일주일 '잠잠' 축산농. 종식 기대
(보은=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보은군 마로면 송현리 유모(89) 할머니는 요즘 하루하루 지내는 게 고통이다. 보름 전 옆 마을서 시작된 구제역이 마을 안으로 옮겨붙은 뒤 벌써 열흘째 집 밖 출입을 못하고 있다.
가족 없이 혼자서 생활하는 유 할머니는 오래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하다.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경로당을 오가면서 식사를 해결해왔지만, 구제역이 터진 뒤 경로당마저 문을 닫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졌다.
요양보호사가 챙겨주는 음식으로 그럭저럭 식사는 해결하고 있지만, 24시간 집에 갇혀 있다 보니 시간 가는 게 더디고 힘들다. 말벚이 없어 입에 거미줄이 칠 지경이다.
보은발(發) 구제역이 보름째 접어들면서 방역대 안에서 고립생활을 하는 주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마을 입구에 방역초소가 들어서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마을회관과 경로당 등이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이웃간 교류도 뚝 끊긴 상태다.
이 마을 정영일 이장은 "마을 안에 10여곳의 축사가 있는데, 2곳에서 연달아 구제역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살벌해졌다"며 "축산 농민들은 아예 문 밖 출입을 끊었고, 이웃들도 눈치가 보여 외출을 자제하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5일 이 마을 옆 관기리의 젖소농장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은 당국의 발 빠른 통제에서 무서운 기세로 확산돼 8일 만에 7곳으로 번졌다. 예방적 살처분을 포함해 9일 동안 무려 986마리의 한우와 젖소가 땅에 묻혔다.
해당 농장으로 통하는 길은 완전히 폐쇄됐고, 마을 입구의 방역초소를 통과하려면 일일이 통행일지를 기록해야 한다.
통행 차량은 물론이고 사람도 예외없이 차에서 내려 네모난 통 안에 들어가 온몸을 소독한 뒤에야 초소를 통과할 수 있다.
마을 입구서 만난 한 주민은 "마을을 드나들 때마다 방문지를 보고하고, 차에서 내려 일일이 소독하는 게 여간 성가시지 않다"며 "통제가 삼엄해지면서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죽은 마을이 됐다"고 불편을 토로했다.
일주일째 구제역 추가발생이 없는 데도 축산농민들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300여마리의 한우농장을 운영하는 이종문(52)씨는 "지난 13일 이후 추가발생은 없지만, 불안이 가시지 않아 소한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다"며 "작은 기침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피 말리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고 초조한 심정을 토로했다.
방역당국은 일단 구제역 확산세가 누그러진 것으로 보면서도 이달 24일까지 소독 총력전을 편다는 계획이다.
반경 3㎞였던 방역대를 10㎞로 확대했고, 군부대 제독차량 6대와 광역방제기 등 방역차량 20대를 총동원해 바이러스 퇴치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경태 보은군 부군수는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반경 3㎞ 안의 가축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고, 추가접종한 백신도 서서히 효과를 내고 있어 위험한 시기는 넘기는 것 같다"며 "앞으로 5일간 총력 소독전에 모든 행정력을 모아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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