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국땅서 벼린 시편의 강렬함…송종찬 새 시집
'첫눈은 혁명처럼'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일요일 오전 일곱시/ 이름 없는 국경역에 보슬비 내린다/ 군복을 입은 여군은 패스포트를 검사하고// 김이 피어나는 맥심커피 한 모금에/ 두고 온 당신의 꿈자리가 궁금해지기도 하는/ 정차한 마음을 두드리는 빗방울" ('일요일의 평화' 부분)
등단 25년차 시인 송종찬(51)이 세 번째 시집 '첫눈은 혁명처럼'(문예중앙)을 냈다. 표제에서 엿보이듯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들"('저기압 지대')이나 "카잔 성당의 종소리"('스베타') 같은 러시아의 이국적 풍경을 강렬한 시어들로 새겼다. 61편 중 절반가량의 공간적 배경이 러시아다.
러시아가 시인에게 문학적 고향과 같은 탓이다. 시인은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2011년부터는 기업 주재원으로 러시아에 체류해왔다.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어 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을 내기도 했다. 시집에는 혁명과 전쟁으로 훼손된 삶에 대한 안타까움, 눈이 상징하는 깨끗하고 순수한 세계를 향한 열망이 교차한다.
"교수였던 남편은 혁명의 깃발 속으로 사라져갔다/ 밤 기차로 전선에 끌려간 아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마른 빵을 사려고 줄을 선 적이 없는 철없는 소냐를 위해/ 오십 루블에 꽃다발을 사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똑똑한 남자는 혁명 때 용감한 남자는 이차대전 때 다 죽고/ 이념과 폭격 속에서 끝끝내 피어난 할머니와 들꽃과 소녀와" ('돌아오지 않는 봄' 부분)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가없는 유채꽃밭 너머인가/ 첫눈이 내린 전나무 숲인가// 톨스토이의 사과나무 동산에/ 줄기를 잇대어 서 있는/ 아름드리 자작나무// 열서넛 슬라브 소녀들이/ 사랑이 이루어진다며/ 연리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야스나야폴라나' 부분)
순수한 세계를 향한 갈망은 두만강·압록강 국경지대를 배경 삼아 통일의 염원으로 귀결된다.
"신의주발 목포행 막차에/ 만주 연해주를 떠돌던 사연들도/ 북방의 눈발에 실려 오리니/ 갯내음 속 기별처럼 동백꽃 피어나고/ 목포에서 판문점 499킬로미터/ 갈 수 있는 길이 거기까지라는데" ('국도 1호선' 부분)
이홍섭 시인은 "혁명과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러시아와, 전쟁으로 인한 분단국가의 비극이 서린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지역을 다니며 쓴 이 작품들에는 반전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서의 시인의 면모가 확연히 드러나 있다"고 해설했다. 112쪽. 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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