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안먹고, 비싸서 못먹고…가축병에 먹거리시장 대혼란(종합)
수급·가격 불안 지속…10명 중 6명 "닭고기·계란 소비 줄여"
(서울=연합뉴스) 유통팀 =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에 구제역까지 더해져 먹거리를 둘러싼 혼란이 확대되고 있다.
계란 대란에 이어 닭고깃값도 오른 데다 구제역 확산으로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우유와 쇠고기, 돼지고기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농가에 당장 비상이 걸렸고 식품업계나 소비자들도 불안하다.
◇ AI에 계란·닭고기…구제역에 우유·쇠고기도 '불안'
한동안 시장을 뒤흔들었던 계란에 이어 닭고깃값이 오르고 있다.
AI 발생 이후 소비가 위축돼 가격이 하락세였지만 설 연휴를 기점으로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산지가격 기준으로 지난달 23일 육계 1㎏은 1천252원이었지만 지난 7일에는 1천901원으로 보름 만에 50% 이상 뛰었다.
이에 대형마트 3사는 9일부터 주요 닭고기 제품 가격을 5~8% 인상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AI로 수요가 급감해 하락세였던 닭고기 가격이 명절 이후 상승세"라며 "구제역으로 소고기나 돼지고기 수요가 닭고기로 몰린다면 추가적인 가격 상승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제역이 급속도로 퍼지면 우유, 소, 돼지고기 수급에도 문제가 생겨 또 다른 '대란'으로 번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구제역 피해 지역이 커지고 소뿐만 아니라 돼지까지 번진다면 공급 감소로 인한 가격 급등으로 가계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계란은 수입 조치 등으로 가격 상승세가 꺾였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한판(30개)에 8천원대로, 5천원대였던 1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싸다.
AI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려면 6개월 이상이 필요한데, 소비 회복 속도가 빠르면 다시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
계란 매출은 최근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롯데마트의 계란 매출은 AI가 발생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3개월 연속 감소했다. 그러나 이달 1~7일에는 매출이 1.1% 늘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물량 공급에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수급이 조금 나아진 것이 매출 신장의 원인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살처분 규모가 워낙 커서 AI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올해 가을이나 겨울쯤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축산품에 대한 소비자 불안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77.2%가 '향후 AI가 더욱 확산될까 염려된다'고 답했다.
AI 사태를 인지하고 있는 응답자 가운데 AI 발생 이후에도 국내산 닭고기를 평소처럼 먹고 소비하고 있다는 소비자는 41.6%에 그쳤다.
25.1%는 평소의 절반 정도의 수준을 소비하고 있었다. '절반에도 미치지 않게 소비한다'(22.6%), '전혀 소비하지 않는다'(10.7%)는 응답도 다수였다.
10명 중 4명만 국내산 닭고기를 평소처럼 먹고, 나머지는 6명은 소비를 줄였거나 먹지 않는다고 답한 셈이다.
AI가 발생했다고 해도 날것으로만 먹지 않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소비자는 56.7%였다.
계란 소비도 줄어든 모습이었다.
계란프라이의 경우 '계란 대란' 이후 아예 해먹지 않는다는 응답이 15.3%, 조금 덜 먹는다는 응답이 42.7%였다. 소비자 10명 중 6명 정도가 예전보다 계란프라이를 덜 먹는 셈이다.
◇ 식품·유통업계도 '노심초사'…긴장 속 사태 주시
연이어 발생한 가축질병으로 속이 타는 것은 농가와 소비자뿐만이 아니다.
유통업계는 공급과 수요가 어떤 식으로 뒤바뀔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애를 먹고 있다.
축산물에 대한 전반적인 소비심리가 감소하면 매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더 급한 것은 식품업체들이다.
지난 2011년 구제역 사태 때 '우유 대란'을 겪었던 유가공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각 업체는 계약 농장 젖소들의 항체형성률을 확인하는 동시에 수급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당장은 원유 공급에 문제가 없지만 개학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3월까지 구제역이 잡히지 않으면 물량이 모자랄 우려가 있다.
원유가 부족해지면 먼저 저가 제품과 버터와 생크림 등 우유 부산물로 만드는 제품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으로는 불안감에 소비자들이 우유를 마시기를 꺼릴 수도 있다는 점을 업계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한 유가공업체 관계자는 "2011년 구제역 사태 당시에도 소비가 줄었는데 공급이 더 크게 감소하면서 품귀현상까지 발생했다"며 "고온살균우유는 안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닭고기도 당분간 정상화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육계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상태에서 소비가 회복된다고 해도 공급 물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닭고기 가공업체 관계자는 "시세는 오를 만큼 오른 상태인데 생산은 한동안 모자라니 소비자 가격은 한동안 비싼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가격은 올랐지만, 판매량은 줄어 공급자로서도 타격이 있다"고 말했다.
가공식품업계도 긴장 속에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영향은 없지만 구제역 사태가 확산하면 불똥이 튈 수 있어서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한우 사용량은 많지 않지만 돼지 구제역이 발생하면 타격이 커진다"며 "햄이나 소시지 등에 돼지고기를 쓰는데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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