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멀리, 더 빨리'…메달 색 결정하는 스키장 숨은 과학
가벼워야 하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첨단 소재 총출동
왁싱에 따라 시속 5㎞까지 차이 벌어지기도
(평창=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테스트이벤트를 겸한 국제스키연맹(FIS) 크로스컨트리·노르딕 복합 월드컵이 한창인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 곳곳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좀 더 가볍게, 빠르게, 멀리 나가기 위한 노력은 상당히 많은 부분 과학에서 답을 찾았다.
쉴 새 없이 다리를 움직여야 하는 크로스컨트리는 첨단 탄소 화합물 소재로 스키를 만들었고, 스키점프는 양력(揚力)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스키 가운데 가장 길다.
이처럼 스키장에서 만날 수 있는 과학은 동계 스포츠를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게 한다.
◇날렵한 크로스컨트리 스키, '키다리' 스키점프 스키 = 겨울 스포츠의 한 축으로 자리한 스키가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스키 장비의 발전이 절대적이었다.
인류가 처음 스키를 개발했을 때는 나무 널빤지에 발을 묶은 원시적인 형태였는데, 스키에 부츠를 장착하면서부터 여러 동작을 잡을 수 있게 됐다.
세부 종목별 스키의 모양은 천차만별인데, 클래식용 크로스컨트리는 얇고 뾰족한 게 특징이다.
평지와 완만한 언덕을 오르내리는 크로스컨트리는 양다리를 교차하는 클래식 주법으로 경기할 때 다리와 스키 폴을 쥔 상체의 반동력으로 전진한다.
이때 스키가 무거우면 선수가 금방 지칠 수밖에 없고, 모든 종목 가운데 가장 날렵한 스키를 쓴다.
또한, 눈을 헤치고 나가야 해서 스키 앞부분이 뾰족한 것도 크로스컨트리 스키만의 특징이다.
좌우로 눈을 제치고 나갈 수 있는 프리스타일용 스키는 클래식용보다 조금 더 짧고, 앞이 둥근 모양이다.
클래식용과 프리스타일용 모두 가벼운 게 가장 필요하고, 과학이 집약된 탄소 섬유 소재로 만든다.
노르딕 복합 국가대표 박제언은 "같은 스키라도 종류에 따라 경기력에 큰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경기 때는 여러 스키를 챙겨 경기에 맞게 쓴다"고 설명했다.
스키점프의 스키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도약 단계에서 언덕을 빠르게 내려오는 것도 필요하지만,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게 성적으로 직결된다.
1998년 일본 나가노 올림픽에서 일본 스키점프 대표팀은 다른 선수보다 훨씬 긴 스키를 타고 금메달 2개를 휩쓸었다.
스키가 길면 안정적인 착지와 동시에 공중에서 비행 시 더 많은 양력을 얻을 수 있다.
이후 스키점프에서는 너도나도 긴 스키를 들고 나왔고, 지금은 선수 신장의 146% 이상 길이의 스키를 쓸 수 없다.
신장 180㎝ 선수는 보통 260㎝짜리 스키를 쓴다. 크로스컨트리 프리스타일용 스키가 200㎝도 안 되는 걸 생각하면 큰 차이다.
◇ 메달 색 결정하는 '스키 왁싱' = 스키 동호인들에게 왁싱은 스키 시즌이 끝날 때 한 번씩 해주는 연례행사지만, 0.01초에 승부가 갈리는 선수들에게는 메달 색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스키 왁싱에도 간단한 과학이 숨어 있다. 기본적인 원리는 파라핀 성분의 왁스를 발라 마찰력을 줄여 적은 힘으로도 더 멀리 전진하도록 돕는 역할이다.
스키 플레이트 표면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굴곡이 있는데, 계속해서 경기할수록 표면이 더 거칠어져 마찰계수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이때 왁스를 골고루 바르면 마찰력을 줄여주고, 스키 속도도 높일 수 있다.
오르막 구간이 있는 크로스컨트리의 왁싱은 좀 더 복잡하다.
오르막에서는 잘 미끄러지는 '스피드 왁스'가 오히려 경기에 방해될 수도 있다.
이때 선택하는 왁스는 스키가 뒤로 밀리지 않게 잡아주는 '킵 왁스'다.
크로스컨트리 경기에서는 최상의 배합을 찾아내야 하는데, 이는 대표팀마다 보유한 비밀이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왁스를 바른다고 되는 건 아니다.
설질(눈의 무르기)이나 설온(눈의 온도), 기온, 습도 등을 다양하게 고려해 경기 전 정성 들여 왁스 칠을 한다.
이때 소요되는 시간은 3~4시간이 훌쩍 넘는다.
여러 환경을 고려해야 해서 '정답'은 없고, 경험이 풍부한 전문 왁싱 코치가 환경에 맞게 적절하게 왁스 작업을 한다.
크로스컨트리는 왁싱 코치의 실력에 따라 경기 중 속도가 시속 5㎞까지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전문 왁싱 코치는 스키장에서 전문 인력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대한스키협회도 경기력 향상을 위해 예브게니 가폰(벨라루스) 코치를 기용해 크로스컨트리 대표팀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을 영입하기 위한 스카우트 경쟁도 치열한데, 최고 수준의 전문 왁싱 코치는 연봉 10만 달러(약 1억1천만원)를 훌쩍 넘는다.
박병주 크로스컨트리 대표팀 코치는 "아무리 선수가 컨디션이 좋아도, 왁싱을 제대로 안 하면 절대 좋은 성적을 못 낸다"면서 "우리 때만 하더라도 선수가 직접 왁싱했는데, 지금은 많은 지원을 받아 전문 코치까지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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