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10번' 진정한 주인을 만났다
이대호, 10번 달고 6년 만에 국내 무대 누빈다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거인의 10번'이 진정한 주인과 재회했다.
이대호(35)는 지난 30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6년 만에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올해도 미국과 일본 등에서 뛸 수 있었음에도 이대호는 선수 생활의 종착지로 고향 팀인 롯데를 선택했다.
복귀 첫해부터 주장의 중책을 맡긴 롯데는 이대호에게 등 번호 10번을 안겼다.
이대호에게 10번은 각별한 의미가 담겼다.
이대호는 4년간 150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몸값과 함께 10번이라는 이 등번호에 자신에 대한 기대가 오롯이 담겨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2001년 경남고를 졸업하고 신인 드래프트 2차 1순위로 롯데에 입단한 이대호는 선배 마해영이 달았던 49번을 택해 2004년까지 유지했다.
그는 2005년 등번호 10번을 처음 택했고, 한국에서 뛴 마지막 해인 2011년까지 그 번호를 유지했다.
2006년 타격 3관왕(타율·홈런·타점), 2010년 9경기 연속 홈런과 타격 7관왕(타율·홈런·타점·득점·안타·출루율·장타율) 모두 10번을 달고 쌓은 금자탑이다.
리그를 대표하는 4번 타자로 성장한 이대호는 롯데의 암흑기를 끊었다. 롯데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 '가을야구' 무대를 밟았다.
이대호는 2012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에 입단하면서 1년 동안 25번을 달았지만,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다시 등번호 10번을 유지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대호는 시범경기에서 56번을 달았으나 포지션 경쟁자 헤수수 몬테로가 방출되자 그가 남기고 떠난 10번을 유니폼에 새겼다.
야구에서 10번은 강타자의 상징이다. 재일동포 장훈 씨와 고 장효조 전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의 영향이다.
과거 롯데를 대표하는 4번 타자였던 '자갈치' 김민호도 1984년부터 1996년까지 줄곧 10번을 달았다.
롯데에서 10번을 단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다. 특히 이대호가 떠난 이후에는 '이대호의 10번'이라는 무게를 견뎌야 했다.
자유계약선수(FA)로 두산 베어스에서 롯데로 이적한 최준석조차 부담스러워했다. 두산에서 10번을 달던 최준석은 25번을 선택했다.
롯데에서 10번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대호에게 버금가는 성적을 올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2012년 대졸 신인 투수 송창현(한화 이글스)이 10번을 선택했으나 선수 등록도 마치기 전에 장성호와 1대 1 트레이드가 됐다.
2013시즌을 앞두고 롯데 유니폼을 입은 외국인 투수 스콧 리치몬드 역시 10번을 달았으나 사이판 캠프 합류 첫날 무릎 부상으로 팀을 떠났다.
이후 하준호, 안중열, 김대우가 10번에 도전했으나 주인은 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황재균이 새로 10번을 선택했다.
하지만 황재균마저 지난 시즌을 마치고 미국프로야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스플릿 계약을 맺으면서 10번은 공석이 됐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이대호는 황재균과 바통 터치라도 하듯 10번과 재회했다. 롯데팬들은 장롱 속에 묵혀둔 이대호의 10번 유니폼을 입고 다시 사직구장을 찾을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등번호는 제2의 이름이다. 걸출한 스타들은 은퇴 뒤 '영구결번'의 영예를 안기도 한다. 이대호는 정확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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