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한 시대의 천재시인' 횔덜린 전집 첫 출간
장영태 홍익대 명예교수 번역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이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그러나 시인들은 성스러운 한밤에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나아가는 바쿠스의 성스러운 사제같다고 그대는 말한다." ('빵과 포도주' 부분)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은 독일 시 문학의 정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살아생전에는 괴테나 실러 같은 거장의 그늘에 가려 시인으로서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1802년 사랑이 좌절되고 나서 정신착란을 일으켰고 40년 넘게 옥탑방에 갇혀 살다 세상을 떠났다.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때 시집 한 권 내지 못했다. 그의 시들은 사후에도 한동안 어둠에 가려져 있다가 20세기 들어 발굴됐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횔덜린을 모범으로 삼았고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시인의 시인"이라고 칭송했다. 20세기 표현주의·상징주의는 한 세기 앞서 고전주의의 엄격한 형식과 규범을 거부한 횔덜린을 '현대 서정시의 선구자'로 끌어올렸다.
횔덜린이 남긴 작품들을 모은 전집이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돼 나왔다. 반평생 횔덜린 연구에 매진한 장영태 홍익대 독문과 명예교수가 도이처 클라시커(Deutscher Klassiker) 출판사의 1992년판 횔덜린 전집을 우리말로 옮겼다. 두 권짜리 '횔덜린 시 전집'(책세상 펴냄)에는 그가 열다섯 살 때 처음으로 쓴 '사은의 시'부터 일흔 셋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전망'까지 300여 편의 작품이 실렸다.
작품들을 시기에 따라 구분하고 단상을 기록한 메모도 함께 실었다. 작품마다 학계 연구결과를 반영한 주석이 달려 이해를 돕는다. 헤르만 헤세를 시인의 길로 인도했다는 '빵과 포도주'는 현실의 밤에 대한 묘사에서 시작해 그리스 신들의 날을 그린 다음 신들이 남긴 빵과 포도주를 통해 희망을 노래하는 구조다. 장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횔덜린이 자신의 세계관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가장 빈틈없는 시도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횔덜린은 독일 역사상 가장 난해한 시를 남겼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의 시 세계엔 게르만의 영웅들이 등장하고 그리스도가 갑자기 디오니소스의 형제가 되기도 한다. 장 교수는 그의 시 세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주제나 노래방식이 다양할 뿐 아니라, 거의 서사에 육박하는 내용에서부터 암호에 가까운 시편에 이르기까지 그 세계의 지평은 광활하다. (…) 독자도 지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시공의 제약을 넘어 시야가 탁 트이는 문학적 체험을 향유하게 된다."
각 권 568∼748쪽. 3만∼3만5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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