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신세대 소설가들, 내밀한 공간을 응시하다
테마 소설집 '호텔 프린스'·'집과 투명'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한국과 중국의 문학 전통은 닮은 듯 서로 다르다. 거대서사 대신 소서사를, 집단보다는 개인을 주로 그리는 최근의 큰 흐름만큼은 겹친다. 거리와 광장에서 사적 공간으로 무대를 옮긴 두 나라 젊은 작가들의 테마 소설집이 나란히 나왔다.
'호텔 프린스'(은행나무 펴냄)에 실린 단편소설 여덟 편은 모두 호텔이라는 낯설고도 편안한 공간에서 펼쳐진다. 작가 안보윤·서진·전석순·김경희·김혜나·이은선·황현진·정지향은 실제로 호텔에 묵으며 소설 한 편씩을 써냈다.
황현진의 '우산도 빌려주나요'에서 호텔 방은 모녀 사이에 쌓였던 오해를 푸는 장소다. 군인인 남친이 갑자기 휴가를 얻어 나오고 하필이면 엄마도 주말에 오기로 한다. 백화점에서 엄마 전화를 받다가 절도범으로 몰려 옷값 스무 배를 물어줘야 한다. 일이 자꾸 꼬인다.
자취방 대신 호텔에서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 딸은 체크인부터 어머니와 부딪친다. 빨리 입금하라는 백화점 직원의 독촉전화를 한 방에서 몰래 받기도 힘들다. 샤워하는 사이 또 걸려온 전화. 대신 전화기를 집어든 어머니가 자초지종을 듣고 말한다. "착해빠진 년은 아니지만, 도둑년도 아닙니다."
김혜나의 '민달팽이'에서 호텔은 절대적으로 은밀한 공간이다. 화자는 달팽이 문양만 그리는 40대 화가의 호텔 방 작업실을 매일같이 찾아가 밀회를 즐긴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외도 장면을 어머니와 함께 직접 목격한 과거가 떠오른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한 남자만 사랑하지 않겠다고,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내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화자의 독백은 변명이자 자기합리화에 가깝다.
기획에 참여한 작가들은 모두 2005∼2014년 사이 등단한 신세대다. 다소 쓸쓸한 방랑자 느낌의 인물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소재를 요리하는 방식과 감각은 천차만별이다. 244쪽. 5천500원.
'호텔 프린스'가 한국 문단의 최신 경향을 보여준다면 '집과 투명'(예담 펴냄)은 1990년대 이른바 '후일담 소설'이 한바탕 휩쓸고 간 직후 초점을 점차 좁혀가던 시기 한국 소설과 흡사한 분위기다.
중국 작가 여덟 명에게 주어진 주제는 '집'이다. 황베이쟈(黃배<초두머리 아래 倍>佳)의 '완가 친우단'은 친지간 결속력이 약해지고 첨단 기술이 일상에 침투하는 현대 중국사회의 단면을 그린다. 결혼 3년차인 젊은 부부는 고학력에 파출부를 불러 집안일을 시킬 만큼 풍요롭게 산다. 친척이 거의 없는 남편은 SNS에 생긴 처가 사람들 대화방에 몰두한다.
개인주의적 성향의 부인은 중국 전역에 있는 자신의 친척들과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는 남편이 마뜩잖다. 남편은 어느 날 친척 장례식에 참석한다며 떠나는데 돌아온 뒤에는 부부의 결별이 기다린다.
저우쉬안푸(周瑄璞)의 '가사 도우미'에선 언니가 동생 집의 허드렛일을 하게 되면서 자매의 관계가 엉클어진다. 전통적 가족 관념마저 무너뜨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작가들은 집을 내면에 몰입하는 차단된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더 넓은 세계를 조망하는 도구로 삼는 듯하다.
아동문학가로 유명한 황베이쟈를 제외하면 대부분 생소한 이름에, 1970∼1980년대 태어난 젊은 작가들이다. 모옌(莫言)·옌롄커(閻連科) 등 그동안 국내에 주로 소개된 1950∼1960년대생 중국 작가들은 문화대혁명과 그 이후의 기억을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반면 이들은 산아제한정책 이후 태어난 이른바 '독생 자녀 세대'로서 급격히 산업화·도시화한 현대 중국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받아들인다.
번역에 참여한 김태성씨는 "서사의 유형과 분위기를 달리하는 중국 신세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작품 속 현실과 풍경이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훨씬 실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56쪽.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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