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고장' 강원 영동…30∼40㎝ 눈에 도심 마비됐던 이유는(종합)
단시간 집중 폭설·차량통제 불능·밤 아닌 낮부터 눈 쏟아져
(강릉·속초=연합뉴스) 이종건 박영서 기자 = 지난 20일 '눈 폭탄'이 쏟아진 강원 영동은 순식간에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치운 만큼 쌓이는 눈앞에서 제설작업이 무의미할 정도였다.
전날 내린 눈의 양은 고성 간성 47㎝, 속초 46㎝, 양양 33.5㎝, 강릉 27.5㎝, 삼척 21㎝, 동해 18.5㎝ 등이다.
산간도 미시령 33.5㎝, 진부령 32㎝로 많은 눈이 쌓였다.
5∼20㎝가 내릴 것이란 예보와 달리 30㎝에서 일부 지역은 50㎝에 가까운 폭설이 내리자 시민들은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기상청은 "저기압이 중부지방을 통과하고 동해상으로 빠져나가면서 더 발달하고, 북동기류가 더 강해지면서 일부 지역에 40㎝가 넘는 폭설이 내렸다"고 설명했다.
◇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3시간 만에 30㎝
강원 동해안과 산간은 우리나라 대설 다발지역이다. 태백산맥과 동해(바다) 등 지형적 특성상 눈이 많이 내리고, 북동기류 유입 시 더욱 많이 내린다.
'눈 고장'답게 하루 50㎝ 이상 내려야 폭설 이름값을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10㎝에도 '뭐야, 눈이 오다 말았잖아', 30㎝ 정도가 와도 '오려면 오고 말라면 말든가'라고 반응한다는 강릉사투리가 있을 정도다.
동해안 행정기관의 제설능력도 뛰어나다.
강릉시는 눈을 잘 치워 '제설의 달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설 당국은 30∼50㎝의 눈에 도심이 마비됐던 이유로 "단시간에 너무 많은 눈이 쏟아진 탓이 컸다"고 설명한다.
당초 5∼20㎝였던 예보가 다소 빗나간 면도 없지 않으나 폭설에 익숙한 영동에서 이번 눈의 양이 기록적인 것은 아니다.
50㎝ 정도가 내린 산간을 제외한 속초와 강릉 등이 경우 30㎝ 조금 넘는 눈이 내렸음에도 도심과 도로가 마비된 것은 단시간에 너무 많이 쏟아진 눈을 제설 당국이 감당하기 버거웠던 면이 크다.
속초의 경우 오전 8시께 흩날리던 눈이 1시간 만에 폭설로 변했다. 3시간여 동안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졌다.
'비'에 비유하면 '폭우'에 가까운 수준이다.
당시 시간별 적설 현황을 보면 속초는 오전 10시에 11.7㎝를 기록하더니 오전 11시 19.4㎝에 이어 정오가 되자 30.9㎝를 기록했다.
불과 3시간 동안 30㎝가 쌓인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후 2시에 43.2㎝를 기록하더니 오후 6시가 되자 46㎝까지 쌓였다.
강릉도 오전 11시까지는 적설량이 '0'이었으나 낮 12시 4.5㎝, 오후 1시 12㎝, 오후 2시 17㎝, 오후 3시 22㎝로 3시간 만에 20㎝ 넘게 내렸다.
◇ 차량통행 잦아 통제 불능…제설작업 어려움 겪어
하필 차량통행량이 많은 낮 시간대에 눈이 쏟아진 탓에 제설은 더욱 어려웠다.
언덕길에서 차량이 미끄러지고, 곳곳에서 차량이 뒤엉키면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미끄러지는 차량 대부분 스노타이어나 월동장구를 갖추지 않은 외지 차량이었다.
특히 언덕길 정체는 7번 국도 양양 낙산고개와 밀양고개, 속초 대포고개에서 심하게 나타났다.
극심한 정체로 차들이 옴짝달싹 못 한 채 3시간가량 갇혔다.
오르막길에서 미끄러진 차량 때문에 뒤따르던 차량이 오도 가도 못한 채 도로에 발이 묶이면서 고립상태에 빠졌다.
이에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은 7번 국도 고갯길 곳곳에서 중앙선 분리 구간을 통해 차들을 반대 차선으로 진입시켰다.
낙산고개의 경우 교차로가 인접한 낙산사와 설악해수욕장 입구에서도 경찰과 함께 차를 반대 차선으로 돌렸다.
그러나 통제에 응하지 않은 차들이 회차하지 않고 운행을 강행하며 도로는 더 불통이 됐다.
당국의 차량 우회 조치에 따라주지 않은 것은 물론 일부 운전자들은 차를 도로변에 그대로 두고 자리를 떴다.
차량 정체가 이어지자 제설차량조차 진입하기 어려웠다.
제설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차량 운전자들은 도로에서 먼 산만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속초시 관계자는 "단시간에 많은 눈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눈이 집중적으로 쏟아진 시간이 차량운행이 많은 시간인 탓에 제설작업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 최근 폭설과 다른 점은…처음부터 '눈'·낮에 집중 폭설
이번 폭설은 미시령에 38㎝가 쏟아졌던 지난달 14일과 진부령에 47㎝나 내린 지난달 27일과 적설량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다.
예년보다 폭설 대비가 소홀했던 것도 아니다.
각 시·군은 본격적인 겨울철에 앞서 염화칼슘과 소금도 넉넉히 준비하고 장비도 점검하는 등 도로제설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경찰·소방·군 당국 등 관계기관과 회의를 통해 협조체계도 다졌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눈'이 내렸다는 점이다.
지난 폭설은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린 사례다.
젖은 도로를 차들이 계속 지나다니면서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폭설은 처음부터 눈만 내렸고, 그것도 단시간에 워낙 많이 내렸다.
운전자들이 삽으로 퍼내고 돌아서면 퍼낸 만큼의 눈이 다시 쌓여 있었다.
체인을 치다 눈사람이 될 정도였다.
밤이 아니라 눈이 낮에 많이 내린 점도 제설 당국이 어려움을 겪은 요인 중 하나다.
주요 경사로 등 고갯길에는 제설제를 예비살포했지만, 일반 도로는 차들이 계속 눈을 밟고 지나가면서 눈이 딱딱한 얼음으로 변했다.
보통 밤에 내린 눈은 차들이 많이 밟지 않아 제설작업이 수월하다.
그러나 얼어버린 도로는 자동염수살포에도 쉽게 녹지 않았다.
강릉시 관계자는 "눈 자체가 잘 녹는 눈이 아닐뿐더러 한 번에 너무 많이 쏟아졌고, 차들이 많이 밟아 제설제가 잘 침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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