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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기부천사들 사연 구구절절…"인간답게 사는 세상" 한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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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기부천사들 사연 구구절절…"인간답게 사는 세상" 한 뜻

"도움 되갚는 게 도리…소외계층 도와야" 부모 뜻 받든 선행도

자수성가 사업가 17년째 4억5천만원어치 쌀 기부, 하청 노동자 100만원 쾌척

(전국종합=연합뉴스) 설을 앞두고 얼굴 없는 기부 천사가 넘쳐난다.






남도 돕고 얼굴도 알릴 겸 '인증 샷'으로 선행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익명 기부를 작정한 이들은 끝내 남 앞에 나서지 않는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어려운 이웃을 향해 따뜻한 온정을 나누는 이유는 십인십색이다.

어려운 시절 받은 도움을 되돌려 주려는 경우도 있고, 소외계층을 향한 측은지심에서 하는 기부가 있는가 하면 부모의 뜻을 착실히 받든 선행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이들이 바라는 건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가슴 따뜻한 세상이다.

지난 20일 제주시에는 익명의 독지가가 백미 10㎏ 1천 포대(2천500만원 상당)를 기탁했다. 벌써 17년째다.

60대 후반인 이 후원자는 2001년부터 설과 추석 때마다 저소득층을 위해 쌀을 보내온다. 지금까지 후원한 양은 백미 1만7천800포대, 금액으로 치면 약 4억5천만원에 달한다.

전라도에서 제주로 이사했고, 화북동에서 개인 사업을 한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정보가 없다.

그는 "고향을 떠나 제주에서 어렵게 살아왔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받은 도움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달 초 충북 충주시 소태면사무소에도 익명의 독지가가 쌀과 밀가루 각각 21포씩을 전달했다.

13년째 후원물품을 보내는 이 독지가는 "먹고 살 만한 여건이 되면 잊지 말고 고향 어르신들을 도와 드리라"는 부친의 유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소태면이 고향인 그의 선친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한때는 남의 집살이를 하면서 농사일을 도와주고 삯을 받아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0일 울산시 동구에 현금 100만원을 맡긴 기부천사는 하청업체 노동자인 30대 남성이었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라고 밝힌 그는 "회사와 나라 걱정 때문에 즐겁고 행복해야 할 날이 슬펐던 날로 기억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크리스마스만큼은 사랑하는 아들·딸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메모를 남겼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 행정복지센터에도 지난달 30일 '동전 천사'가 11년째 어김없이 나타났다.

무인 민원발급기 옆에 놓인 종이상자 2개와 돼지저금통에는 동전이 가득했다. 10원, 50원, 100원, 500원짜리 동전이 자그마치 1만2천546개나 됐고, 금액은 118만4천680원이었다.

상자 안에는 '구겨지고 녹슬고 때 묻은 돈일지라도 좋은 곳에 쓸 수 있다'는 글귀가 적힌 메모지가 들어 있었다.






겨울이면 더 힘겹고 명절이 더욱 쓸쓸할 수밖에 없는 소외계층을 직접 언급하는 도움의 손길도 줄을 잇는다.

지난달 말 강원 철원군 서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온 한 여성은 "홀몸노인들을 위한 연료비로 써 달라"며 100만원을 쾌척했다.

50대 말에서 6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이 여성은 고향이 철원 서면이라고만 밝힌 채 3년째 성금을 보내왔다.

지난 12일 대전 동구 판암1동 주민센터에 10㎏짜리 쌀 50자루를 전달한 50대 남성도 "설에 거동이 불편하거나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전해주면 고맙겠다"고 부탁했다.

지난해 11월과 12월 인천 동구청과 남동구청, 부평구청에 5천만원씩 모두 1억5천만원을 기부한 남성은 "홀몸노인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 남성은 신원을 묻자 '김달봉'이라는 이름으로 둘러댔다.

인천톨게이트에서도 지난 3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40대 남성이 "좋은 일에 쓰라"며 31만여원이 든 묵직한 동전 꾸러미를 던지고 사라졌다.

광주광역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만원짜리 지폐 20장이 든 봉투를 맡긴 등산복 차림의 노인은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몰랐으면 한다"며 차 한잔 하라는 권유도 뿌리치고 돌아섰다.

거액을 내면서 회사 이름 알리기를 마다하는 기업도 있다.

반도체부품을 생산하는 안산의 한 중소기업은 최근 안산시에 1억원을 익명으로 기부했다.

안산시 관계자는 "회사 직원이 직접 찾아와 거액을 내놓으면서 기부자를 익명으로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전했다.

한 지자체의 복지업무 담당자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꾸준히 돕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며 "기부 문화가 더 확산하면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정책과 함께 사회안전망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태현 정회성 김광호 변지철 우영식 이재현 김용태 이재림 김선호 공병설 기자)

k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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