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香萬里] '흑인인권운동가' 킹 목사 부인의 삶은 어땠을까
코레타 여사의 삶과 사랑, 그녀가 남긴 유산 담은 책 출간
(뉴욕=연합뉴스) 박성제 특파원 =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이다.
흑인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도록 강요했던 법을 철폐하기 위해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버스 보이콧 운동을 1년 동안 주도해 승리했으며, 1963년 인종차별철폐와 시민권확보를 위해 25만 명이 동참한 '워싱턴 행진'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외쳤던 연설은 아직도 감동을 던지고 있다.
흑인 청소부 파업 지원차 테네시 주 멤피스에 갔다가 인종차별주의자가 쏜 총에 맞아 39세의 아까운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그를 미국 사회는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에 추모하고 있다.
킹 목사의 가치관과 고난의 투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책이 최근 출간됐다.
'나의 삶, 나의 사랑, 나의 유산'(My Life, My Love, My Legacy)은 킹 목사의 부인이었던 코레타 여사의 기억을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시카고트리뷴 등에 몸담았던 흑인 여성 언론인 바바라 레이놀즈(Barbara Reynolds)이다. 저자는 1970년대에는 또 다른 흑인 인권 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의 이야기를 다룬 책 'Jesse Jackson, the Man, the Myth, and the Movement'를 출간하기도 했다.
저자는 킹 목사가 살해당한 뒤인 1975년부터 코레타 여사와 친구처럼 지내왔다. 코레타 여사와는 비밀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고,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도 킹 가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목사가 됐다.
코레타 여사의 사후 11년째에 나온 신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코레타 여사의 삶과 그녀가 사랑했던 킹 목사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남긴 유산 등을 차분하게 펼치고 있다.
코레타 여사는 킹 목사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927년 앨라배마 주 헤이베르그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았으며 사려깊은 성격이어서 '현모양처'가 되기에 충분한 요건을 갖췄다. 열다섯살 때는 백인의 방화로 집이 불타는 아픔도 겪었다.
킹 목사를 만난 것은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였다. 콘서트 가수가 되기 위해 음악을 배우던 중 '키 작고 매력없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 출신의 마틴 루터 킹 '학생'을 만났다.
이들의 가치관은 처음에는 달랐다. 코레타는 가수 생활을 하며 북부에서 편하게 살기를 원한 반면 마틴은 결혼한 뒤 앨라배마의 주도인 몽고메리로 옮겨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의 삶을 희망했다.
몽고메리로 이주한 뒤에 코레타는 남편의 투쟁을 적극 지원했다. 킹 목사는 코레타 여사가 육아와 가사에만 전념하기를 원했지만 코레타 여사는 육아, 가사노동을 넘어 흑인인권운동단체인 NAACP 활동에도 뛰어들었다.
킹 목사가 살해된 뒤에는 남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발로 뛰었다. 네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애틀랜타에 킹 센터를 설립해 매년 100만명 이상이 찾는 세계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도록 했으며, 15년 동안의 끈질긴 로비 끝에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연방공휴일로 지정토록 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줄기는 '테러에 대항해 싸웠던 삶'이다.
어릴 때부터 백인의 폭력에 시달렸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차별과 싸우는 남편을 지켜봐야 했으며, 남편이 암살된 뒤에는 남편을 깎아내리려는 세력과 싸웠다.
암울했고 부끄러웠던 미국의 아픈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인종차별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헨리 홀트 앤드 코(Henry Holt and Co.) 출간. 36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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