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문재인 고향서 첫 민심청취…文 자서전 반박(종합)
거제·부산서 노조·학생·상인 만나…'대선 양강구도' 노린듯
'봉하마을→팽목항→5·18→여수'로 진보·호남 지지기반 확보 시도
(부산·거제=연합뉴스) 홍정규 류미나 기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세웠다.
반 전 총장은 귀국 나흘째인 16일 본격적인 대외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적진'의 한가운데로 돌진했다.
그는 이날 오전에 경상남도 거제를, 오후에 부산을 잇따라 방문했다. 거제는 문 전 대표의 출생지다. 부산은 문 전 대표의 '정치적 고향'이다.
오는 17일에는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을 찾는다. 문 전 대표가 비서실장으로 보좌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곳이다.
반 전 총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고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봉하마을을 찾아 권양숙 여사를 예방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반 전 총장이 전국 일주의 첫 걸음을 이들 지역에서 뗀 것은 정치적 포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 일성으로 '정치교체'를 강조, '정권교체'를 앞세운 문 전 대표를 겨냥했다.
또 전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헌법 개정에 찬성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이날 전시작전권 문제를 놓고 문 전 대표와 대척점에 섰다.
문 전 대표가 자신을 향해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쪽에 서본 적이 없다"고 하자 "제가 더 오래 살았으니까 한국의 그 많은 변혁을 더 많이 겪었다"고 반박했다.
'더 오래 살았다'는 반 전 총장의 표현은 문 전 대표가 정치적 경력은 더 길지만, 자신이 '인생 선배'라는 인식을 은연 중 드러낸 셈이다.
실제로 반 전 총장은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6·25 전쟁 때 진짜 땅 바닥에 앉아 공부했다"며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외교관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문 전 대표의 자서전 관련 질문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어려운 일을 제가 훨씬 더 많이 경험하고, 그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더 노력했다"고도 했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한 여성 시민이 "우리가 바라는건 새로운 정치"라며 '정치교체'를 거론하자 반 전 총장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깡통시장과 자갈치시장에선 상인들이 "반기문 대통령"을 연호하자 다소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시장에서 어묵을 먹고 큰 생선을 들어올리는 등 대선 후보들이 '단골 소재'로 보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반 전 총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자 초반 행보부터 정면 승부를 건 것으로 풀이된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거제와 부산에서 노동조합, 대학생, 시장 상인들을 주로 만났다.
봉하마을 이후 방문지는 '세월호 참사'의 현장인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이다. 이튿날에는 광주 5·18 민주묘지와 화재 피해를 입은 전남 여수 수산시장으로 간다.
당장 선거를 치를 경우 자신이 취약한 계층으로 꼽히는 청년·진보 성향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면서 호남 표심을 구애하는 전략으로 여겨진다.
한편으로는 선두 주자인 문 전 대표만 집중적으로 견제하면서 다른 여권 주자들과 차별화, '반기문 대 문재인'의 양강 구도를 형성하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반 전 총장은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정상외교로 선박 수출을 촉진하겠다는 등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세일즈 외교'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상도 내비쳤다.
그는 방문지마다 비교적 저렴한 식당을 골라 식사를 했다. 자신을 동행 취재하는 기자들과 '치맥(치킨과 맥주)'을 함께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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