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 지방('여고생 살인사건' 단죄 주역 경찰…)
'여고생 살인사건' 단죄 주역 경찰…"너무 늦어서 오히려 미안"
나주 여고생 살인사건 진범 밝혀낸 경찰 "국민보호 경찰 제 역할 다하려 했다"
'태완이법 이후 첫 유죄사례'…불기소처분 내린 사건 재수사 결정해준 검찰도 '어려운 결단'
(나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경찰은 국가의 상징이기에 국민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재수사했습니다. 뒤늦게나마 범인을 처벌해 다행이지만, 너무 늦어서 여고생 가족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이라고 불리는 2001년 2월 전남 나주시 드들강 변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모(40)씨가 11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15년 일명 '태완이법'으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사라진 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에 관한 첫 유죄사례다.
◇ "경찰이 안 하면 누가 하나"…15년 묵은 사건 다시 꺼내 든 경찰
다른 강도살인 사건으로 이미 무기징역 형을 살고 있던 범인에게 또다시 무기징역형이 내려져 '사실상 가석방이 불가능한 처벌'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이 사건을 재수사한 경찰은 "당연한 결과"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장기미제사건'으로 밀려있던 사건을 다시 세상에 내놓은 이는 2015년 1월 30일 당시 전남 나주경찰서로 부임한 김상수(59) 수사과장(현 해남경찰서 수사과장)이었다.
김 과장은 수사과장 부임 후 가장 먼저 관내 미제 사건부터 살폈다.
여고생이 성폭행당하고 살해돼 옷까지 벗겨지고 방치된 이 사건을 김 과장은 퇴직을 한 달 남짓 남겨둔 강력팀장에게 "퇴직 기념으로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살펴달라"고 맡겼다.
2012년 대검찰청 유전자 감식 결과 피해자 체내에서 검출된 체액이 다른 사건(강도살인)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 김씨의 DNA와 일치해 재수사가 진행됐지만, 용의자는 증거불충분으로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받았던 터였다.
그러나 재검토한 한 장의 부검 사진에서 그동안 수사과정에서 놓친 부분이 박새롭게 발견됐다.
초동수사에 미흡해 사건 발생 초기 범인을 즉각 잡지 못하고 14년여 만에 용의자를 찾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빠져나간 상황에서 김 과장은 경찰과 검찰 모두 놓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재수사를 결정했다.
나주경찰서 형사 2명, 전남지방경찰청 미제사건팀 2명 이렇게 4명이 김 과장의 지휘하에 사건을 다시 수사했다.
전담팀원 허영 경사 등은 여고생의 가족, 용의자의 여자친구 등 주변인을 다시 만나 진술을 추가 확보하고, 피해 여고생의 소지품에서 생리일로 추정되는 날짜를 기록한 메모도 발견했다.
이 같은 재수사의 노력은 직접 증거는 없었지만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살인한 범인의 잔인한 범행을 밝혀줄 간접 증거의 퍼즐로 완성됐다.
◇ 태완이법 이후 첫 유죄판결…"검찰이 큰 결단했다"
재수사 과정의 가장 큰 장애물은 검찰이 한번 불기소 처분한 사건을 재수사하는 것에 대한 '세상의 오해'였다.
'검찰동일체 원칙' 상 다른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을 다시 재수사해 기소한 것은 결정을 번복한다는 오해로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경찰은 재수사 과정과 사건 재송치 과정에서 자칫 '검찰이 불기소처분에 경찰이 반발한다'는 오해를 살까 봐 신중했다.
광주지검 강력부도 자칫 검찰조직에 상처로 작용할 수도 있었지만, 불기소처분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결정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경찰과 검찰이 함께 손잡고 협업한 셈이다.
태완이법 시행 이후 공소시효가 사라진 미제사건에 대한 첫 유죄판결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김상수 과장은 "공소시효가 있으면 시간에 쫓겨 자칫 수사가 소홀해질 수 있는데, 공소시효가 사라져 살인범들을 언제든지 끝까지 수사해 추적할 수 있게 됐다"고 자평했다.
또 "재수사 과정에서 '경찰 공무원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본인의 자칫 허무맹랑할 수 있는 말에 호응해준 경찰 직원들도 고생이 많았다"며 "현행 형사소송법상 쉽지 않은 결단을 해 재수사를 함께한 검찰이 중요한 결단을 해줬다. 이는 검경의 적극적인 협업의 성과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범인을 잡지 못해 마음고생 했을 가족과 피해 여고생에게는 "범인을 결국 처벌했지만,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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