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을 놀라게 했던 과학자 월리스의 '말레이 제도' 첫 완역
월리스가 처음 발견한 '월리스 날개구리' 유튜브 영상[https://youtu.be/rRSRI93-ook]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진화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하기 1년 전인 1858년 한 통의 편지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연구해 온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와 같은 내용이 들어있는 이 편지를 보고 다윈은 자신의 연구가 수포가 될까 우려했다.
자극을 받은 그는 편지를 받은 뒤 2주 만에 미발표 원고 2편을 정리해 편지에 실린 논문과 함께 학회에 제출했고 이듬해에는 '종의 기원'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다윈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편지의 주인공은 영국의 자연사학자 겸 인류학자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1823∼1913)였다.
월리스가 다윈에게 보냈던 편지는 '변종이 원형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경향에 대해서'(On the tendency of Varieties to Depart Indefinitely From the Original Type)라는 논문이었다.
월리스는 이 논문에서 동물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새끼를 낳고 이 중 환경에 잘 적응한 새끼들만이 생존해 자연적으로 도태가 이뤄진다고 주장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기본 개념을 제시했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말레이 제도'(지오북 펴냄)는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의 개념을 발견하고도 다윈에게 '진화론 창시자'의 영예를 내줘야 했던 월리스가 진화론을 발견한 계기가 됐던 말레이 제도 탐사기를 담은 책이다.
말레이 제도는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의 지역에 걸쳐 있는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 티모르 섬 등으로 이뤄진 세계 최대의 군도(群島)다.
책에는 월리스가 1854년부터 1862년까지 8년간 말레이 제도를 탐사하면서 관찰한 각 섬의 지질과 생물지리, 동식물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동식물뿐 아니라 말레이 제도 여러 민족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민족학적 특징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민족학적으로도 평가를 받았다.
비록 '진화론의 창시자'라는 타이틀은 얻지 못했지만, 월리스는 말레이 제도를 탐사하면서 생물지리학 역사에 여러 중요한 공헌을 남겼다.
발리섬에서 롬복섬으로 넘어가면서는 발리섬에서 봤던 생물들을 불과 24km 떨어진 해협 건너편 롬복섬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해 아시아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간 동물군의 차이를 나타내는 경계선이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훗날 영국의 과학자 토머스 헉슬리가 월리스의 이름을 따 '월리스선'(Wallace Line)으로 이름 붙인 이 경계선은 생물지리학에서 중요한 발견으로 꼽히고 있다.
월리스는 또 말레이 제도 탐사 중 12만5천여점의 생물 표본을 채집했는데 이 중 1천여종은 월리스가 처음 발견한 생물 종이기도 하다.
'나는 개구리'로 알려진 '월리스 날개구리' 역시 월리스가 말레이 탐사 중 처음 발견해 기록한 것으로, 이처럼 월리스의 이름이 붙은 종만 100여종이 넘는다. 책에는 월리스가 채집한 각종 표본을 바탕으로 당대 삽화가들이 그린 목판화 삽화가 실려 이해를 돕는다. 월리스가 다윈에게 보냈던 논문도 함께 수록했다.
원서는 말레이 제도 탐사가 끝난 이후 7년이 지난 1869년 출간됐다. 1890년 10판이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도 절판되지 않고 계속 출간되고 있다.
노승영 옮김. 848쪽. 3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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