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킹메이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 서거
이슬람혁명 1세대…개혁·보수 넘나든 이란 정계 거물
각종 헌법기관·의회 의장·대통령 두루 거쳐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의 거물급 원로 정치인인 아크바르 사혜미 라프산자니(83)가 8일(현지시간) 오후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현지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란 국영방송은 "라프산자니가 이슬람과 혁명을 향한 쉼없는 여정 끝에 천국으로 떠났다"고 그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그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을 이끈 1세대로, 이후 이란 정치계에 최고위직을 두루 거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라프산자니는 실용주의적 보수파로 분류되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개혁 진영과도 손을 잡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이슬람혁명 직후인 1979년 11월부터 9개월간 혁명 정부의 내무장관에 임명돼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이듬해인 1980년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장으로 선출돼 9년간 재임한 뒤 1989년 제4회 대선에서 당선돼 재선에 성공, 1997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1983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무려 34년간 국가지도자운영회의(Assembly of Experts) 위원으로 재직(2007∼2011년 의장)했다. 이 헌법기관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권한이 있다.
동시에 1989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국정조정위원회(The Expediency Council) 의장을 맡았다. 이 조직은 최고지도자 보좌, 장기국가정책 입안, 국회와 헌법수호위원회(Guardian Council)간 대립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대통령 재임 기간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내 경제를 재건하기 시장 경제 정책을 과감히 도입하고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는 등 진보적이고 실용적인 통치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당시 서방의 제재와 전쟁 후유증으로 이란 경제는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외교 정책에서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경색된 아랍권, 중앙아시아권과 접촉을 늘려나가는 노선을 택했다.
라프산자니의 전임 대통령은 현재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다. 라프산자니는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가 되는 데 기여하는 등 협력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그의 정치적 비중이 큰 만큼 하메네이 못지않게 권력 서열 2위인 대통령 선거에 영향력을 끼쳐 '노련한 킹메이커'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란의 대표적인 개혁인사인 모하마드 하타미의 대통령 당선(1997년)에 기여했다. 2000년 총선에서는 보수 진영을 두둔해 개혁 진영에서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005년 대선에도 후보로 나서서 강경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와 결선 투표에서 패배한 뒤 보수 정권과 갈등을 빚었다.
2013년 대선에도 후보로 등록했지만 헌법수호위원회의 자격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는 개혁파인 하타미 전 대통령과 함께 실용적 중도파 하산 로하니 후보를 지지했다.
그의 판단은 중도와 개혁파가 연대하는 발판이 됐고, 로하니 후보는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게 된다.
로하니 대통령이 서방과 핵협상을 추진하는 데 내부 강경 보수파의 공격을 무마해 협상이 타결되는 데 기여했다는 시각도 있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