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과 전선 등 국내 주요 중후장대 산업이 실적과 수주에서는 일명 슈퍼사이클에 올라탔지만 노사 관계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먼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주요 조선사들은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오늘(23일)도 올해 임금 및 단체 협약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사이에 HD현대중공업 노조는 다음주 조선업종노동연대와 공동 파업 등 투쟁 수위를 높이겠다고 예고했고 한화오션 노조는 10일째 조선소 핵심 설비인 골리앗 크레인을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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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대표적인 전선 업체인 LS전선의 노조도 설립 37년간 이어오던 무분규를 깨고 사상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반도체처럼 조선·전선도 N% 성과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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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는 단순히 기본급을 몇 만 원 더 올리느냐를 놓고 빚어졌던 갈등과 결이 다르다. 노조들은 자신들의 회사가 호황을 맞자 실적에 따라 보상 금액이 달라지는 신개념 계산법 이른바 ‘N% 성과급’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영업이익의 30% 이상이 성과급 등 보상 재원으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화오션 노조는 특정 비율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존 성과급 산정 방식을 예측할 수 있는 기준으로 바꿔 명문화하라고 요구 중이다.
LS전선 노조는 영업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수치와 표현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회사가 그때그때 일회성으로 성과급을 정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돈을 많이 벌면 임직원들에게도 많이 돌아갈 수 있도록 원칙을 산정 기준을 세우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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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가 돈이 없어서 싸우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있는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두고 부딪히는 ‘호황형 파업’에 맞닥뜨리게 됐다.
▲ "최대 실적? 최대 성과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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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입김이 더 세진 건 회사의 가파른 실적 반등에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2분기 매출액(6조 3,322억 원)과 영업이익(1조 399억 원)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53%, 121% 늘었다. 분기 영업익이 1조 원을 넘어선 건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한화오션은 2분기 매출(5조 4,432억 원)과 영업익(7,361억 원)이 작년보다 65%, 98%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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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이 뛰자 먼저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사측에 월 기본급과 상여금 14만 9,600원, 100% 인상 그리고 영업익 최소 30% 성과급을 골자로 한 제시안을 냈다.
노조가 제안한 성과급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숫자가 상당하다. 올해 연간 영업익 추정치(3조 6,280억 원)의 30%는 1조 884억 원에 달한다. HD현대중공업의 1년 치 투자 비용과 맞먹는 수준이다.
사측은 최근 호봉 승급분 4만 7천 원을 포함한 기본급 11만 원 정액 인상과 격려금 1천만 원 + 200%, 상품권 50만 원을 역제안했지만 노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노조는 2주에 걸쳐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부분 파업을 했고 추석이 지나면 조선업종노동연대와 공동 파업을 비롯해 투쟁을 본격화하겠다고 사측에 경고했다.

한화오션도 비슷하지만 차이는 있다. 한화오션 노조는 사측에 기본급 14만 9,600원 인상, 상여금 800%에서 900%로 상향, 정년 연장 등을 요청하고 있다. 동시에 성과급에 관해서도 조율하자고 청한 상태다. 지금 제도에서는 회사 실적이 좋아져도 임직원이 성과급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계산하기 어렵다며 가늠하기 쉽게 산정 기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낸 거다.
이에 사측은 노사가 함께하는 성과급 제도 TF를 신설하자고 화답하면서 기본급 12만 3,689원 인상, 일시 타결금 650만 원, 복지 포인트 연 100만 원, 경조사비와 미취학 자녀 지원 확대안을 건넸지만 노조는 기대치에 못 미친다며 반려했다.
결국 노조는 전 조합원을 이끌고 파업에 나섰고 선체 블록을 독으로 옮기는 조선소 핵심 장비인 골리앗 크레인마저 10일째 잡아두고 있다.
그러자 한화오션 경영진이 파업으로 선박 건조에 어려움이 있다며 긴급 담화문을 냈지만 어제(22일) 교섭에서도 노조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납기 지연 같은 리스크가 확산되고 있다.

37년 무파업 신화를 쓴 LS전선도 노조에 주저앉았다.
LS전선은 노동조합이 세워진 1989년부터 37년 동안 파업이 없던 회사였다. 하지만 8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지난주 주요 사업장에서 부분 파업하면서 40년 가까운 대기록이 끊겼다.
전선도 파업의 배경은 조선과 마찬가지로 호실적이다.
지난해 LS전선의 매출(7조 5,882억 원)과 영업익(2,798억 원)은 전년보다 12%, 2% 불어난 사상 최대 실적이었다. 올해는 상반기 영업익(2,384억 원)이 지난해 연간에 근접할 만큼 분위기가 좋다.
이에 노조는 사측에 기본급을 6.5% 올리고 영업익 15%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한다. 성과급을 1인 기준으로 셈하면 약 3천만 원 정도다. 반면 LS전선은 기본급 4% 인상, 성과급 850만 원을 고수하고 있어 서로 격차가 큰 상황이다.
그러면서 노조는 다음주(29일) 24시간 전일 파업으로 응수하겠다고 반발했다. 여기에 지난해 임단협을 마치고 사측이 노조 집행부 사퇴를 종용했다며 법적 분쟁 중으로 감정의 골이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다.
▲ 고용부 "불법은 아닌데..."

노사 간 이견 차가 좁혀지지 않자 정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고용노동부가 이달 초(3일) ‘경영 성과급 등 노동 쟁의 대상 시행 지침’을 발표한 거다.
핵심은 기업의 이익 가운데 일정 비율을 미리 떼어 성과급으로 둬야 한다는 ‘N% 성과급’이 노동조합법상 의무적인 교섭 대상이나 조정과 쟁의 행위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고용부조차 이익이 임직원에만 쓰이는 돈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거다.
고용부는 발표 중 연구 개발과 설비 투자 그리고 배당과 같이 다양한 경영 활동에 재원이 투입되는데 일정 비율을 일찌감치 성과급으로 떼도록 강제하면 회사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이익 연동이 아니라 기본급 또는 연봉의 일정 비율이나 정액을 성과급으로 잡으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이익 연동 성과급에 관해 조정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보니 지침 이후에도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 "투자 안 하면 또 불황"

조선과 전선 회사들은 고용부의 말처럼 지금은 투자도 해야 할 때라고 노조에 맞서고 있다.
실제로 HD현대중공업은 파업 직전인 지난 10일 육상 발전 엔진과 소형모듈원자로(SMR)에 총 1조 722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막대한 수익을 성과급뿐 아니라 슈퍼사이클 지속과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재원으로 보고 있다는 지점이다.
LS전선도 급증하는 AI와 전력망 수요에 대응하려면 생산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며 미국 해저케이블 공장 등 북미에서만 2조 원 넘게 투자하고 있다.
여기에 조선은 수년에 걸쳐 계약 진행률에 따라 매출과 영업익이 인식되고 전선도 구리 같은 원재료 비중이 높기 때문에 보이는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