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도 주가가 급락하는 역설이 반도체주를 뒤덮었다. 반도체 '피크아웃(정점 통과)' 공포가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 관심은 향후 반도체 종목의 주가 추이에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이달 말 예정된 미국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 실적 발표가 반등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코스피지수는 23.13% 급락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26.95%, 33.43% 떨어졌다. 그간 코스피지수를 견인한 반도체주가 약세를 보이면서 국내 증시가 조정받는 모습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종목으로 묶인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이달 들어 18.06% 하락했다. 고점 대비로는 20%넘게 빠진 것으로 AI와 반도체 업종이 약세장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기업 TSMC가 올해 2분기 사상 최대 순이익을 공개했지만 얼어붙은 반도체 투심을 회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네덜란드의 세계 최대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 ASML 역시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최근 2거래일 연속 주가가 하락했다.
주요 반도체 기업이 양호한 실적을 발표하고도 주가가 떨어진 것은 시장이 현재 실적보다 향후 AI 투자 지속 여부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AI 모델의 범용화' 우려가 있다. 중국 인공지능(AI) 기업들이 잇달아 초거대 AI 모델을 내놓으며 미국 빅테크를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문샷AI가 최근 오픈웨이트 모델 '키미 K3'를 공개한 데 이어 알리바바도 차세대 AI 모델을 선보이며 중국 AI 추격이 한층 더 달아오르고 있다.

증권가에선 역사적 저점으로 낙폭이 과도하다고 보는 한편 이달 말부터 이어지는 미국 반도체 관련주의 실적 발표를 계기로 반도체주가 반등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파벳(22일), 메타·마이크로소프트(29일), 아마존(30일)으로 이어지는 실적 발표에서 기존 사업 실적, AI 클라우드 부문 매출 성장률, CAPEX 가이던스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프론티어 인공지능(AI) 모델 기업들과 하이퍼스케일러가 AI 투자를 수익화해 내후년 이후에도 꾸준히 설비투자(CAPEX)를 이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며 "오픈 AI와 앤트로픽 등 주요 프론티어 AI 모델 기업들이 비상장이라는 점에서 AI 수요 확대와 수익화, 미래 CAPEX 확대 지속에 대한 단서는 하이퍼스케일러의 실적 발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번 실적 시즌에서 본업의 이익과 현금흐름이 중요하다"며 "기존 사업의 수익성이 둔화하거나 마진이 하락할 경우 CAPEX 축소에 대한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매출액 증가율 확대도 주목할 요소로 꼽힌다. 현재 시장은 성장률 변화인 모멘텀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올해 1분기 AI 클라우드 부문의 매출액 증가율 확대가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매출액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낮아질 경우 시장에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며 "AI 클라우드 부문의 매출액 증가율 둔화는 중국산 AI 모델의 성장과 멀티모델 활용 확대, 이에 따른 토큰당 비용 하락과 같은 AI 범용화 우려를 키울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CAPEX 가이던스 확대 여부도 주목된다. 특히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의 CAPEX 가이던스가 관건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연구원은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는 AI 경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영업현금흐름 대비 CAPEX 규모는 오라클, 아마존, 메타에 비해 보수적"이라며 "AI 경쟁에서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소극적으로 비치는 상황에서 AI 투자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두 기업이 CAPEX 전망을 상향 조정하거나 AI 경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 지속 기대감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CAPEX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기업의 주가 반등 트리거는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대형 데이터센터 운영기업)의 실적 발표"라며 "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메타·아마존의 설비투자(CAPEX) 합산 증가율이 여전히 높고 투자수요 증가를 감안하면 높은 영업이익률 유지도 가능해 깜짝 실적 달성 여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어닝 서프라이즈 여부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향방이 갈릴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연구원은 "지난해 이후 알파벳은 분기 기준으로 주당순이익(EPS)이 예상치를 밑돈 적이 없다"며 "매출액 기준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개월 평균 주가 수익률은 각각 11%, 17%로 어닝쇼크 이후의 2%, -3%와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메타와 아마존은 EPS 예상치 초과 또는 미달 여부가, 마이크로소프트는 CAPEX 예상치 초과 또는 미달 여부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수익률에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