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뉴욕 증시 3대지수는 하락했습니다. 다우지수가 0.98% 떨어진 것을 비롯해 S&P 500과 나스닥 지수도 각각 1.21%, 1.35% 내렸습니다. 최근 반도체주가 이끄는 한국 증시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1.38% 올랐습니다.
증시 낙폭보다 더 주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 국채 시장의 움직임이 화끈했습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미 국채 수익률은 장중 17베이시스포인트(bp) 가까이 올랐습니다. 보통 채권시장에서는 하루에 10bp 이상 움직이면 무언가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예상대로 동결됐습니다. 그런데 시장에선 '매파적 동결'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케빈 워시 신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이번에 보여준 것들이 시장엔 신호탄이 됐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성명문부터 간결했습니다. 약 130단어로 이뤄진 성명서는, 직전 성명문의 300단어에 비해 크게 줄었습니다. '앞으로 정책 조정의 폭과 시기를 고려한다'는 등의 '완화 편향성' 문구는 삭제되었고요. 현재 인플레이션 추세와 향후 전망에 대한 연준의 견해도 명확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전망과 같은 불확실한 것 대신 최선을 다해 판단한 사실만 전달하겠다는 게 케빈 워시 신임 의장의 기조입니다. 이것이 드라마틱하게 드러난 두 장면이 있습니다.
과묵해서 더 무서운 연준 의장
성명문도 짧았는데, 기자회견에서 답변은 더 짧았습니다. "미래의 일은 감히 예측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고요. 또 다른 기자가 "점도표를 보니 위원 중 9명이나 금리 인상을 원하던데, 시장이 이걸 앞으로의 지침으로 해석하면 되냐"고 날카롭게 묻자, 이번에도 "그 문제는 태스크포스에서 다룰 것"이라며 공을 넘겨버렸습니다.
기자들은 "2028년까지도 2%라는 연준의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어 보이는데, 그럼 대체 어떤 상황이 돼야 금리를 올릴 건지”알고 질문했지만, 워시 의장은 "앞으로 뭘 할지 미리 힌트를 주지 않기로 했으니, 내 개인 의견을 더 보태는 것도 부적절하다"며 입을 닫았습니다.
그동안 연준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던 월스트리트 저널의 닉 티미라오스 기자의 존재감 하락도 주목할 부분이었습니다. 파월 의장 시절에는 주로 핵심 질문을 던지는 두세 번째 순서로 마이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순서가 아예 맨 뒤로 밀렸습니다. "닉 기자가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블룸버그의 기사가 나온 뒤에야 겨우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는데요. 비공식 소통 창구마저 완전히 닫겠다는 신호를 보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앞으로 연준의 입에서 힌트를 찾기는 대단히 까다로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케빈 워시, '점 빼고' 인플레 관리 집중
연준은 매년 네 차례(3월, 6월, 9월, 12월) 경제전망요약(SEP)을 발표합니다. 여기에 연준 위원들이 각자 앞으로 기준금리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지 점을 찍어 나타내는 점도표가 시장의 분석도구가 되어왔는데요. 이번에 나온 점도표에는 점 하나가 빠져 있었습니다. 워시 의장이 제출을 거부한 겁니다. 점도표는 '최선을 다해 판단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는 뜻이겠지요.
그동안 월가에서도 그렇고, 국내 운용사 CIO들 가운데도 점도표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움직임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만큼 변동성 높은 최근 상황엔 점도표의 예측력이 떨어진다는 말들이 많았는데, 케빈 워시 의장이 행동으로 보여준 거죠.
여기에 케빈 워시 신임 의장이 새로 다섯 개의 태스크포스를 출범하기로 한 것을 보면, 연준의 방향성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케빈 워시 의장은 앞으로 바뀔 ①연준의 소통 방식과 ②연준 자산 관리, ③경제 데이터를 모으고 활용하는 시스템 개편과 ④AI 확산이 고용 시장에 미칠 영향 분석 부문, 그리고 ⑤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체계 자체를 바꾸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올 연말까지는 이 모든 개혁 작업을 마무리 짓겠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말을 하지 않는 게 때로는 더 강력한 신호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시카고 기금금리 시장 선물에 나타난 미국의 금리 인상 확률을 보면, 시장에서 바라보는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이 기존 올해 12월에서 9월로 앞당겨졌습니다. 이는 미국 중간선거 이전에 미국의 금리가 올라갈 수 있겠다고 시장이 본다는 뜻입니다. 선거 앞두고 기준금리 올라가면, 미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여당도 이를 반기지는 않겠지요.
실제로 과거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시절엔 금리가 동결될 때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기준금리를 낮춰야 한다며 소셜미디어에 날선 글을 올려왔는데요. 이번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체제에서 결정된 기준금리 동결에 대해서는 어떤 코멘트도 남기지 않았다는 점도 살펴볼 부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