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대형 기술기업들이 잇따라 천문학적인 규모의 AI 자본지출을 발표하면서 월가의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알파벳이 전날(4일, 현지시간) 2026년 자본지출 가이던스로 1750억~1850억 달러를 제시한 데 이어, 아마존도 5일 장 마감 후 올해 자본지출을 약 2천억 달러로 잡겠다고 밝혔다. 이는 월가 컨센서스보다 30% 더 늘어난 금액으로 수익성 악화 전망에 아마존 주가는 한때 10% 가까이 급락했다.
현재까지 공개된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기준 하이퍼스케일러 5개 기업(아마존·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메타·오라클)의 2026년 자본지출 합산액은 이제 6천억 달러를 넘어서선다. 2024년 2560억달러에서 불과 2년 만에 두 배 이상 불어나는 셈이다.
크레디트 사이츠 등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75%, 즉 4,500억 달러가량이 AI 인프라에 직접 투입된다. 이들 기업 하나의 자본지출만으로도 미국 에너지 섹터 전체 설비 투자액을 초과한다는 모닝스타의 분석이 나올 정도다. 문제는 이러한 막대한 자금이 언제, 어떻게 수익화하여 다음 실적에 반영되는지 확신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전날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CEO는 "AI 투자가 전 분야에서 매출과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자신했고, 아마존의 앤디 재시 CEO는 "AI, 칩, 로보틱스, 저궤도 위성 등 수요가 워낙 강력하다"며 장기 투자자본이익률(ROIC)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형 기술기업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실적을 발표한 아마존마저 월가 컨센서스를 넘어서지 못한 점도 불안 요인이다. 아마존은 핵심 사업부인 AWS 매출은 전년 대비 24% 성장하며 13분기 만에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1분기 영업이익 가이던스는 165억~215억달러로 컨센서스 222억달러를 밑돌았다.
D.A. 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애널리스트는 "AWS 매출 증가분보다 자본지출 증가분이 더 크다는 게 문제"라며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가 서로를 의식하며 확전하는 건설 경쟁에 갇혀 있고, 이것이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지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신용전략팀은 이들 빅5의 AI 자본지출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제외한 영업 현금흐름의 94%에 육박하게 됐다며, "순수 내부 자금만으로 AI 투자를 감당하는 것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 스티펠, 마이크로소프트 투자의견 강등…"클라우드 성장 의문"
이런 가운데 기술 경쟁과 소프트웨어 산업의 격변으로 인한 희생양으로 지목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날 하루 5% 가까이 하락해 시가총액 3조 달러 아래로 주저앉았다. 실적 발표 직후 지금까지 14% 하락해 주당 400달러 선마저 내줬다.
투자은행 스티펠(Stifel)의 브래드 리백 애널리스트는 이날 마이크로소프트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하향하고, 목표주가를 540달러에서 월가 최저 수준인 392달러로 낮췄다. 리백 애널리스트는 “실적에 대한 단기 촉매가 보이지 않고, 자본지출 증가율이 애저 클라우드 매출 성장률을 꺾어 의미있는 회복을 보이기까지 주가는 박스권에 갇힐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티펠의 이번 보고서에서 핵심은 각 기업들이 의식적으로 경쟁 중인 클라우드의 경쟁 심화가 결국 수익을 갉아먹는 구조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번 어닝시즌에서 메타는 올해 1150억~1350억 달러, 알파벳은 최대 1850억달러, 아마존은 2000억달러를 예고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구체적인 2026년 수치를 밝히지 않았지만, 직전 분기 자본지출이 375억달러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쟁사 못지 않은 지출에 나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분기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매출 성장률이 전 분기 40%에서 39%로 둔화된 반면, 알파벳의 구글 클라우드는 48% 성장을 기록했다. 여기에 구글 등과 연합한 앤스로픽의 성장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오픈AI에 의존해왔던 마이크로소프트의 회복이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설명이다.
리백 애널리스트는 또한 2027회계연도 기준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본지출 추정치를 약 2000억 달러로 잡았는데, 이는 월가 컨센서스인 1600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런 상태에서 현재 67% 수준인 매출총이익률이 63%까지 하락하고, 오픈AI의 점유율 하락 위험이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가치를 갉아먹는 구조가 된다.

◆ 비트코인 6만달러대 추락…마이클 버리 "죽음의 소용돌이" 경고
대형 기술주와 소프트웨어 섹터의 투매가 이어지는 가운데, 암호화폐 시장의 붕괴도 시장의 하락 심리를 자극했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이날 장중 한때 6만 2251달러까지 밀리며 2024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초 기록한 12만 6000달러 사상 최고가에서 반토막난 가격이다.
다른 암호화폐 가운데 이더리움도 주간 기준 23%, 솔라나는 24% 하락하며 2022년 11월 이후 최악의 주간 성적을 기록 중이다. 이더리움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지난달 30일 “앞으로 5년간 온건한 긴축에 돌입하겠다”며 보유하고 있던 1만 6,384개의 ETH의 현금화에 나선 영향도 받고 있다. 부테린은 오픈 소스 보안 기술 등을 위해 해당 자금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취약해진 시장에서 창시자의 이탈 소식까지 더해지며 하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번 암호화폐 가격 움직임은 전통 기관들의 이탈과 이로 인한 강제 청산이 이뤄지면서 연쇄적인 하락을 부르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한 자산의 가격이 떨어지면 지난 상승기에 가격을 밀어올렸던 레버리지 롱 포지션이 강제 청산을 당하고, 이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며 가격을 더 끌어내리게 된다. 코인글래스 데이터에 따르면 이번 주에만 20억 달러 이상의 롱·숏 포지션이 증발했는데, 이런 가운데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이 운용하는 미국 현물 비트코인 ETF에서 지난 3개월간 50억 달러 이상이 빠져나갔다.

영화 ‘빅숏'으로 유명한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이번 주 자신의 서브스택 글을 통해 암호화폐 시장의 연쇄적인 하락 즉 '죽음의 소용돌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현재 암호화폐 가격은 비트코인 채굴업자들이 사업을 유지할 최저 가격인 8만 7천 달러선을 밑돌고 있고, 이는 다시 채굴 업체의 수익악화와 보유하던 비트코인의 대량 매도를 부르게 된다.
이 경우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보유하던 기업의 대차 대조표가 악화하면서 자본시장 내 상장 유지 등을 위해 추가 매도가 일어나는데, 마이클 세일러의 스트래티지가 사업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스트래티지는 5일 기준 지난 4분기 124억 달러의 순손실을 확인했다. 비트코인 약 71만 3000개 이상을 평균 매입 단가가 7만 6052달러에 보유중으로, 이번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22V리서치는 "2011년 이후 비트코인의 다섯 차례 주요 약세장에서 평균 하락폭은 80%였고, 최소 하락폭도 72%였다"며 "이번 사이클에서 그 수준이 반복되면 비트코인은 3만 520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윙클보스 형제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제미니는 직원 25% 감원을 발표한 뒤 8% 가량 내렸고,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 기업인 코인베이스는 이날 하루 -13%, 올해 약 40%가까이 하락했다.

◆ 'SaaS 아포칼립스'…복합 악재에 약세장 전환 기로
이번 주 기술주에 대한 매도세가 유독 광범위한 배경에는 AI 경쟁으로 인한 소프트웨어의 하락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주 초 앤스로픽이 법률 업무 자동화 플러그인을 공개했고, 이날은 오퍼스 4.6 버전을 통해 금융 분석 전문 기능까지 공개했다. 톰슨로이터,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오라클, 세일즈포스 등이 추가 하락하는 등 주요 지수 하락을 심화시켰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흐름을 두고 월가 트레이더들 사이에서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의 종말 즉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고 전했다.
거시 경제 지표에서 미국 고용시장에서도 냉각 신호가 잇따랐다.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1월 기업들의 해고 계획 건수는 10만 8435건으로, 2009년 이후 1월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달 신규 채용 계획은 5306건에 그쳐 역시 2009년 이후 최저였다.
이번 주 미 노동부 고용보고서가 연기된 가운데, ADP 민간고용은 1월 2만2000건 증가에 그쳤다. 노동부의 구인건수(JOLTS)도 12월 654만건으로 2020년 9월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특히 구인-실업자 비율은 0.87대 1로, 2022년 중반 2대 1을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고용시장의 냉각이 뚜렷했다.
이러한 여파로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S&P500 지수는 이날 1.23% 하락한 6,798.4까지 밀렸고, 다우존스 지수는 60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대형 기술기업을 모아놓은 나스닥100은 3거래일 연속 급락하며 지난 4월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시장의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변동성 지수인 Cboe VIX는 21.95선까지 올랐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약 9bp(1bp=0.01%) 하락한 4.192%를 기록하는 등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