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진 와중에 엔지니어들은 경쟁사인 SK하이닉스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FT는 14일 '위기의 삼성, 전례 없는 직원 동요로 AI 야망에 타격'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전자가 5월 반도체 사업 수장 교체를 단행했지만, 익명의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는 "대표 교체 후에도 변화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엔지니어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에선 SK하이닉스에 밀리고,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수탁생산)에선 대만 TSMC를 따라잡지 못해서 내부 분위기가 어둡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람들은 SK하이닉스에 비해 안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급여에 불만족한다"며 "많은 사람이 회사를 떠나 경쟁사들로 갈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고 FT는 전했다.
FT는 삼성전자 직원들의 불만이 파업에서 드러났다고 전했다.
스마트폰 사업부의 한 연구원도 FT에 "금전적 보상이 줄어 직원들 사기가 떨어졌다"며 "경영에 방향성이 없어 보여서 그들은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가전 판매 직원은 "회사에 다니며 매출 성장에 익숙했는데 떨어지는 건 처음 본다"라며 "우리 팀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FT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의 무기한 파업으로 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좁히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한국 엔지니어 인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 삼성 투자자는 밝혔다.
반도체 컨설팅회사인 세미어낼러시스(SemiAnalysis) 마이런 시에 에널리스트는 HBM 개발에서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밀리고, 엔비디아 HBM 공급업체 자격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고 FT는 전했다.
FT는 지정학적 위험 요인으로 고객들이 TSMC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는 낙관론도 나왔지만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TSMC 지배력을 약화키지 못했다고 짚었다.
시에 애널리스트는 "고객들은 대안을 원하지만, 기술 품질과 안정적 공급원 확보를 최우선에 둔다"며 "이는 삼성전자가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FT에 말했다.
FT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메모리, 어드밴스드 패키징(AVP·첨단 조립) 역량을 다 갖춘 유일한 기업으로, SK하이닉스-TSMC의 차세대 AI(인공지능) 개발 협력에 대응하기 적합하다 주장한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이런 '원스톱(일괄) 서비스' 강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시에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어느 한 측면에서도 최고가 아닌 상황에선 반도체 설계업체들은 원스톱 숍에 거의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사업 여러 분야에서 기술 역량이 약화한 것을 볼 때 리더십과 문화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며 "문화 재설정은 길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회사에 가장 좋은 일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노무라의 CW 정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와 기술 격차를 해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최악의 상황은 지난 것 같다고 했다고 FT는 전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