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속되어온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뚜렷한 하락세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뉴욕증시는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내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반영하면서 중소형주, 채권, 금 시장 중심의 랠리를 보였다. 반면 이달 들어 신고가 랠리를 보였던 매그니피센트7 종목과 대형 유통, 제약 업체는 강한 차익 실현이 나타나 지수 전반의 하락을 유도했다.
현지시간 11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9.37포인트, 0.88% 하락한 5,584.54로 전날 사상 최고치 기록을 반납했다. 애플과 엔비디아, 테슬라 등의 급락으로 인해 나스닥은 364.04포인트, 1.95% 빠진 1만 8,283.41에 그쳤다. 인프라, 전통 제조업체 주가가 살아나면서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전날보다 32.39포인트, 0.08% 상승한 3만 9,753.75로 거래를 마감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1.14% 오른 배럴당 83.04달러, 국제금값도 금리인하 기대를 반영하며 1.68% 뛴 트라이온스당 2,419.6달러를 기록했다.
● 금리인하 기대가 촉발한 순환매…Mag7 동반 급락
이날 전체 시장의 흐름은 전날가지 AI 테마를 주도하던 대형 기술주, 반도체 기업이 급락한 반면 상대적으로 오르지 못했던 산업, 유틸리티, 부동산, 중소형 금융 기업들의 강세로 양분된 모습을 보였다. 이를 반증하듯 소형주 2천개 종목으로 구성한 러셀2000 지수는 하루 만에 3.57% 오른 2,125.04포인트로 연중 최고치에 10포인트 차이로 다가섰다.
강도높은 긴축으로 수익 악화에 시달리던 대표적 리츠(REITs) 기업인 아메리칸타워는 하루 만에 5.3% 뛰었고, 부동산 수요 회복 기대로 D.R호튼 등 건설 기업도 많게는 7% 가량 뛰었다. 또한 대규모 자금 조달에 숨통을 틔게 된 유틸리티 업종에서 넥스테라 에너지가 2.47% 오르는 등 시장의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소형 종목들은 이날 호재도 쏟아졌다.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퀀텀 스케이프는 합작 투자를 한 폭스바겐이 자회사를 통해 배터리 라이선스를 확보했다는 소식에 30.5% 뛰었다. 폭스바겐을 통해 전기차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예정인 리비안도 이 소식으로 2.38% 올랐다.
주요 도심과 공항 인근의 에어택시 운항을 목표로 하고 있는 조비 항공은 자회사 H2FLY를 통한 수소전기 eVTOL이 캘리포니아에서 523마일 운항에 성공하면서 19.5% 뛰었다. 이에 반해 애플 -2.32%로 8일 만에 하락 전환했다. 나머지 마이크로소프트 -2.48%, 엔비디아 -5.57%, 알파벳 -2.78%, 메타 -4.11%, 아마존 -2.37% 등 대형 기술주들도 힘을 쓰지 못했다. 7년 만에 연회비 인상을 단행한 코스트코도 전날 사상 최고가 경신 후유증으로 장초반 상승분을 반납한 채 이날 주가가 4.27% 가량 밀렸다.
● 물가 뚜렷한 하락…연준 위원도 정책 변화 시사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을 바꾼 건 이날 오전에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이 공개한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다. 지난달 미국의 물가는 시장 예상보다 낮은 것은 물론 고질적인 서비스 가격도 둔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한 달 전보다 -0.1%,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에 그쳤다. 소비자물가지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20년 5월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주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에너지, 식품 물가 제외)는 한 달 전보다 0.1%, 전년 대비 3.3%를 기록했다. 헤드라인보다 둔화 폭은 적지만 두 달 연속 완만한 지표 하락을 보이면서 시장에 낙관적인 신호를 보냈다. 소비자물가지수의 70%를 차지하는 주거비는 5개월 만에 처음 0.2%로 상승폭이 반으로 줄었다. 의료 서비스 물가도 0.3%에서 0.2%로 내렸고, 운송 부문에서 항공료는 5% 감소를 이어갔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이날 현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동, 인플레이션, 경제 전망과 오늘 지표를 바탕으로 일부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고 본다"며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메리 데일리 총재는 "물가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지만 울퉁불퉁한 경로가 될 것"이라며 "올해 한 두 달 금리인하가 적절하다"고 전했다.
채권시장은 이러한 지표를 반영해 일제히 랠리를 보였다. 기준금리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11.7bp 내린 4.513%, 10년물 금리는 6.8bp내린 4.211%를 기록했다. 미국의 달러화 가치도 하락으로 돌아섰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환산한 달러 인덱스는 전날보다 0.55% 내린 104.47을 기록했다. 달러 가치 하락에 신흥국 통화도 회복세를 보였다. 달러당 160엔을 넘던 일본 엔화는 이날 달러대비 한때 2% 넘게 내려 158엔선을 회복했다.
● 기술주 하락 키운 테슬라…"로보택시 10월로"미국 최대 전기차 생산 기업인 테슬라는 인공지능에 기반한 완전자율주행, 로보택시 공개 일정이 미뤄졌다는 블룸버그의 단독 보도로 하루 만에 8%나 급락했다. 테슬라는 전날까지 11일간의 상승 랠리를 이어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테슬라가 로보택시 공개 일정을 8월에서 8월로 미뤘다"며 프로젝트팀이 프로토 타입을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또한 차량의 특정 요소를 재작업하기 위한 디자인 작업 등으로 제품 공개에 차질을 빚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테슬라가 이러한 계획을 내부적으로 전달했다며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2016년 마스터플랜2를 통해 완전자율주행기술 기반의 차량을 선보이겠다고 밝혀왔다.
2분기 실적을 발표한 델타항공은 이날 4% 넘게 내렸다. 비즈니스석 등 매출은 늘었지만 저가 항공사와 운임 경쟁으로 지난 분기 순이익이 1년 만에 29% 줄었고, 매출은 154억 1천만 달러로 컨센서스를 소폭 밑돌았다. 델타항공은 또한 올해 프랑스 파리에서 치러지는 하계 올림픽으로 인해 대서양 항로의 이용 고객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3분기 좌석 예약 성장률은 5~6%, 매출 성장률은 2~4%로 낮췄다. 이러한 여파로 이날 유나이티드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 등 나머지 대형 항공사들도 2~3% 가량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