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응징'을 예고했으나 실제로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형국이다.
테러 피의자 대다수가 타지키스탄 출신 외국인으로 드러났지만 서방 제재 상황에서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뒷문'으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푸틴 대통령이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내세워 장기집권을 정당화해 왔지만 이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3년째 장기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국방력, 정보력을 분산하는 것도 어려운 선택지다.
현지 시간 22일 오후 7시 40분께 모스크바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의 대형 공연장에서 총격을 가한 괴한들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 조직원이라고 IS가 밝혔다.
ISIS-K는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이란 등지에서 활동하며 수년간 러시아를 집중 공격해 왔다.
2015년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시리아와 이라크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던 IS를 몰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점, 중앙아시아 각국의 IS 척결 노력을 지원해 온 것이 이유로 지목된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이들에 대한 본격적 대응에 나서기엔 곤란한 지점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러시아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 교수는 23일 영국 더타임스 기고문에서 "그(푸틴)는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에겐 쉬운 선택지가 없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국제사회의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위축된 와중에 수십년만에 최악의 테러 참사가 벌어졌다는 게 갈레오티 교수의 지적이다.
갈레오티 교수는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극적 제스처를 보이고 싶은 충동을 느낄 가능성이 크지만, 누구를 상대로 그렇게 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중앙아시아 일대에 점조직으로 흩어진 ISIS-K의 지도부를 찾아 직접 응징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또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 수백만명에 이르는 러시아 내 중앙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대대적 색출 작전이 될 것으로 보이나,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해 온 이들을 대거 쫓아내면 경제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또 국제사회의 제재를 우회해 서방 제품을 러시아에 반입하는 통로가 돼 온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사이에 외교적 분쟁이 생길 수 있다.
ISIS-K가 테러 배후를 자처한데다 미국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공론화했는데도, 러시아 수뇌부가 우크라이나 연루설을 제기하기에는 현실적 부담감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이번 사건의 핵심 용의자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려 했다며 "이들은 우크라이나 측과 관련 접촉을 했다"고 23일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도 같은날 연설에서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며 배후를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IS와의 싸움에 전력을 분산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하려는 셈법일 수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3일 텔레그램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 총기 테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부인하며 "푸틴과 다른 인간쓰레기들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