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저성장의 상징과도 같았던 일본,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던 일본 증시로 자금이 몰려드는 이유를 살펴보면 한국 증시 부진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진단도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증권부 유주안 기자와 이야기 이어나갑니다. 증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강한 반등의 직접적 원인부터 살펴볼까요? 증시부양을 위해 일본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죠?
<기자>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사들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지 여부를 이번주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작년 3월에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 미만 상장사들에게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목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데 따른 후속조치인데요, PBR은 장부가치, 청산가치라고도 불리는데, 이게 1배도 안 되는 저평가 기업들은 배당금 상향, 자사주 매입, 자산 매각, 구조조정 등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계획을 제출해야 합니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자본효율화와 주가제고를 위한 경영진의 실행행동'이라는 엑셀 파일을 열어보면 기업이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했는지 여부가 체크돼 있습니다. 'Diclosed'로 표기된 기업은 이행을 한 것이고, 'Under Consideration'이라는 표기는 이행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직까지 대상기업의 40% 정도가 여전히 계획을 내지 않은 상황인데, 끝까지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도쿄 거래소가 매달마다 이 리스트를 업데이트해서 공개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조치는 증시에 상당히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예고된 이후 일본 기업들이 배당을 크게 늘리고 자사주 매입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어제 우리 정부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가입대상과 한도 대폭 늘리겠다 발표했는데, 일본은 한발 앞서서 NISA라는 개인저축계좌와 개인연금에 대해 세제혜택을 전폭적으로 늘리는 조치를 취한 바 있습니다. 이 역시 상당히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자본시장 전문가의 말로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흥미로운 것은 이제 작년에 이 제도를 발표하고 나서부터 일본 주가가 되게 많이 올랐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특히 PBR이 1 미만인 기업들은 PBR 1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구나라고 해서 기관 투자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이 그리고 해외 유수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사는 행태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제 주식시장의 활황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전고점을 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이제 꽤 널리 퍼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덕분에 주식투자 수익률이 올라갔으니 투자자 입장에선 반갑지만 기업 입장에선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겠는데, 일본 정부가 증시 부양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자> 저성장의 고리를 끊겠다는 강한 의지가 증시부양으로 이어졌다고 분석됩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저출산 고령화를 겪은 나라입니다. 이미 1970년대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07년 초고령 사회가 됐습니다. 여기에 오랜 경기 침체로 인해 경제에 역동성이 떨어지고 기업들의 투자와 성장의 선순환이 막혀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일본 가계들 역시 자금운용에 매우 보수적인데, 일본 가정 장롱에 200조엔이 숨어 있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장기간 임금 정체, 실질임금 감소는 일본 경제의 고질병으로 꼽히는데 마이너스 금리 하에서 투자도 하지 않다보니 노후 대비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계자산 증대를 위해 금융투자상품으로 머니 무브를 정부가 주도하고 있고,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거죠.
공적연금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 1%P만 올라도 연금고갈 5년 늦춘다는 통계가 있는데 일본은 연금 고갈 이슈는 피해있지만 주식 수익률이 올라가면 연금 재정이 튼튼해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앵커> 증시 부양도 중요하지만 일본 경제의 기초체력이 회복세를 보이는 것도 증시 강세의 주요 원인중 하나일 겁니다. 일본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자> 경제의 기초체력을 가늠할 수 있는 일본 기업들의 실적을 살펴보면, 계속 좋아지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반사효과가 일본 경제 회복을 주도한 측면이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반도체 산업의 경우, TSMC나 마이크론 삼성전자 등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투자를 이전하고 있습니다. 엔저가 지속되며 주력 산업인 자동차, 기계 등 수출에서도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실적은 3년간 연달아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올해 4~9월까지 일본 상장기업들은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5.7% 증가한 375.1조엔, 순이익은 9.8% 증가한 23.2조엔을 기록했습니다.특히 2분기인 7~9월 기준 닛케이225 기업 절반 이상이 매출과 영업이익이 예상치를 웃돈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관광객 증가와 소비 증대로 백화점 등의 실적이 좋았고, 수출기업도 좋았습니다. 이달 말 이후로 발표가 예정된 3분기 실적도 달러엔환율이 연말에 140엔까지 추가로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예상치를 뛰어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다만, 일본 내에서 느껴지는 경기회복의 체감도는 생각보다 낮다, 는 지적도 있습니다. 개인 소비지출이 늘어난 것으로 나오지만 엔저로 인해 급증한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소비가 늘었고, 일본 내국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세계적 인플레이션 영향에 수입물가 고공행진으로 실질임금인상률은 줄고 있는데, 내부와 외부의 시각차가 큰 이유로 꼽힙니다.
[인터뷰] 김승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일본 내 체감효과는 약간 일반 국민들 느끼는 게 거리감이 있어 보입니다. 경기가 좋아지면 소비지출 늘어야 하는데 내국인의 소비(가계지출)로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도 전세계 인플레 영향을 받고 있고 엔저가 심하니 수입단가는 높게 뛰면서 실질임금인상률이 낮아 가계에선 마이너스로 느끼는 측면이 있습니다.
<앵커>
일본이 조만간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포기하고 통화정책에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이 점은 일본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기자> 역대급 엔저가 이어지면서 수출기업 이익이 늘어난 반면 수입가격도 대폭 뛰었습니다. 오랜 엔저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의 출구전략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의 취임 1주년을 맞는 4월, 늦어도 9월엔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엔화가치가 급격히 오를 경우를 미리 막기 위해 당국은 매우 점진적이고 완화된 속도로 하겠다는 걸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긍정적으로 본다면 금리인상 자체가 경기 회복의 자신감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 일본간 큰 금리차로 일본을 빠져나간 자금이 일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옵니다.
반대편의 전망도 존재하는데, 올해부터 미국이 금리인하에 나설텐데 굳이 일본이 적극적으로 금리인상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엔저가 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겠고, 증시에는 유리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증시가 워낙 활황을 보이니 일본 내부에선 닛케이 지수가 4만까지 갈 것이란 기대감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국내에도 엔화나 일본 상장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많으신 만큼 금리와 통화정책의 추이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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