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별세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40년 전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주고받은 편지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4일 공개했다.
김 전 대통령이 1983년 2월 15일 키신저 전 장관에게 영어로 적어 보낸 영어 편지에는 "제 삶의 가장 힘든 시기에 저를 대신해서 당신이 큰 노력을 해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쓰여 있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때 미국이 박정희 정권에 김 전 대통령의 신변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가운데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필립 하비브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로널드 레이너드 국무부 한국과장이 이를 주도했으며 키신저 전 장관의 역할은 미미했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편지에 따르면 그의 역할 또한 컸다고 김대중도서관은 평가했다.
미국 외교계의 거목으로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트고 미·소 데탕트(긴장완화)를 이끈 키신저 전 장관은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9일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편지에서 김 전 대통령은 "제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데는 (키신저) 박사님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활동이 큰 영향을 줬다.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며 "박사님께서 1973년 8월 주한 미국대사관에 제가 대사관으로 망명을 원한다면 보호하라고 지시했다는 1974년 일본 언론 보도를 봤다"고 썼다. 또 "한미관계에 긴장이 조성돼 있었지만 이러한 조치를 주도적으로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 "제가 다시 체포된 1980년 5월 이후, 특히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박사님께서 저의 안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시고 저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해주신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키신저 전 장관은 같은 달 24일 답장을 썼다. 그는 "사려 깊은 말씀을 해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며 "당신은 이 나라에 아는 사람이 많고, 당신의 생명을 구한 노력은 오직 저만의 것은 아니다. 그 노력이 성공한 것이 기쁘다"고 답신했다.
김대중도서관은 "이번에 공개된 편지는 김대중과 키신저의 인연이 시작된 배경을 알려주는 매우 가치 있는 사료"라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10여차례 이상 키신저 전 장관과 만났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