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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모님, 일본에서 '부유층 전유물'된 이유 [전민정의 출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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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올해 안으로 맞벌이 가정의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해 가사와 육아를 모두 맡길 수 있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을 서울시에 시범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벌써부터 문화적 차이와 비용 부담 논란에 실질적으로 맞벌이 가정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부호가 붙고 있습니다.

앞서 일본은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늘리기 위해 유사한 제도를 시행해 시장에 안착시켰는데요.

일본의 외국인 가사서비스 도입 선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입니다.


● 日, 육아 빼고 가사만 제공…높은 비용에 부유층이 주로 이용

일본 정부는 2017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늘리기 위해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둔 여성들을 어떻게 복귀시킬 수 있을지가 일본 정부의 큰 과제였는데 가사에 부담을 덜어주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작용했던 거죠.

특히 일본인 가사관리사는 상당히 고령화돼 있어 부족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일본에선 '국가전략특별구역' 정책에 따라 도쿄, 오사카, 교토 등 6개 특구에서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전문 업체가 외국인 가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18세 이상, 1년 이상 일한 경력을 보유해야 하고, 어느 정도 일본어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의 업무 범위는 요리와 세탁, 청소 등 '가사'로 한정돼 있습니다. '아이 돌봄'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만난 도쿄·가나가와현 지역 담당 인력파견기업 파소나그룹은 모두 필리핀 출신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55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곳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청소, 세탁 등 15가지의 가사서비스를 담당하는 데요.

이들의 월 평균임금은 20만엔(약 174만원). 내국인 가사관리사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들은 기숙사에서 머무르며 출퇴근 하기 때문에 보험료나 항공료, 기숙사비, 전기·수도요금까지 이용자가 부담해야 하는데요.

이 때문에 파소나의 가사서비스 요금은 시간당 4,290엔, 우리 돈으로 약 3만8천원으로 꽤 높은 편입니다.

파소나의 고객이 대부분 세대 소득 1천만엔(약 8,740만원) 이상의 부유층인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서 외국인 비중도 40%에 달한다고 합니다.

특히 일본 입국 전 최대 400시간의 교육을 받게 하게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하며 서비스 품질을 높여 부유층의 선호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게 파소나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필리핀 출신의 가사관리사만을 고용하는 것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다른 대상국들보다 관련 국가 자격 기준이 높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선 일반 가정 뿐만 아니라 독신 여성에게도 인기가 많은데요.

후미코 타무라 파소나 그룹 이사는 "이용 고객은 부유층이 대다수지만 세대 소득이 1천만엔 이하인 분들도 있는데 이들은 이용 빈도가 다르다"며 "자신의 상황에 맞춰 주 1회 또는 월 1회로 빈도를 조정할 수 있어 꼭 큰 비용이 부담이 되진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일본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2년 63.4%에서 2021년 73.3%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요.


외국인과 부유층이 중심이긴 하지만 가사관리사 수요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가사대행 서비스 시장 규모는 2017년 698억엔(약 6,100억 원)에서 2025년 2천억엔(약 1조7,4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시행 첫해인 2017년 599가구에 불과했던 외국인 가사서비스 이용 가구 수도 2020년에 5,518가구로 불과 3년 만에 10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에 발맞춰 일본 정부도 시행 지역을 주요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넓히고, 현행 5년인 최장 체류 기간을 7년 안팎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 확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월 200만원'은 韓 맞벌이 가정에 부담인데….


우리나라도 저출산 해소와 고령화에 따른 가사근로사 인력 부족에 대한 대안으로 서울에서 외국인 가사근로자 100명을 시범적으로 고용할 예정인데요.

정부 인증을 받은 민간 기업을 통해 이용 가정으로 출퇴근하는 일본의 외국인 가사서비스 제도와 유사한 방식을 도입하게 됩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받아 국내로 들어오게 되고 일본처럼 내국인 근로자처럼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일본과는 다른 중요한 한가지가 있습니다.

'가사'에 한정된 일본 제도와 달리 가사와 육아 서비스를 한꺼번에 맡긴다는 점입니다.

당초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이 가사와 육아 서비스를 같이 제공해 아이를 키우는 20∼40대 맞벌이 부부와 한부모 가정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데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우선 외국인 가사관리사도 내국인과 같은 최저임금(내년도 최저임금 시급 9,860원·월급 206만740원)을 적용하기 때문에 가정에선 월 200만원의 비용 부담이 불가피합니다.

기숙사비, 교통비를 감안하면 월 이용 금액은 200만원을 웃돌 수도 있고요.

실제 우리나라 맞벌이 가구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기준 736만6천원 인데요. 외국인 가사근로자 월급이 월 200만원만 돼더라도 소득의 27%를 지출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당초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목적이 우리나라 가사근로자 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가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인데,

실제 이용 대상자인 맞벌이 가정에서도 월 200만원을 감당하면서까지 말도 안통하고 문화도 다른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쓸 이유는 크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업무 영역을 놓고 도입국과의 협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애초 정부는 10월까지 필리핀 가사관리사 알선 후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11월 중 비자 발급을 거쳐 올해 말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입국시킬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는 가사관리사가 집안일을 제외한 육아만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반면, 우리 정부는 가사와 육아 모두 해줄 수 있는 역할을 원하면서 협의가 늦어졌고, 아직 인력 확정조차 못한 상태입니다.

사실상 연내 시행이 물 건너 갔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고요.

현재 출퇴근하는 내국인 가사관리사가 시간당 1만5천원 정도 받는 점을 고려하면 외국인 가사관리사 이용료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가사만 담당하는 일본의 가사근로자 시급(3만8천원)보다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서비스가 많아지면 임금도 많이 줘야 하는 것이 맞는데 최저임금만으론 가사와 육아서비스까지 제공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설령 최저임금만 주는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들여오더라도 국내 입국 후에는 임금이 더 높은 제조업 등으로 이탈해 불법 체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 맞벌이 가정 고민 덜려면…"현실 안맞는 제도 보완해야"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자체가 저출산 해소를 위한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의 주요 정책 목표로 여겨지는 '저출생 극복'과 '여성 경제활동참여율 증가'는 통계상 유의미한 관계를 찾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노동력 확보를 위한 외국인 활용 정책의 경제적·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최근 김선빈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국인력 활용 정책 모의실험' 결과 매년 일정한 수의 25∼44세 외국 인력이 향후 200년 동안 내국 인구의 5% 규모로 유입된다고 가정했을 때 "외국인 비숙련 노동자를 들여올 경우 내국인 비숙련 노동자에 타격이 심하고, 반대로 내국인 숙련 노동자는 훨씬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최 교수는 그러면서 외국인력 도입보다 적극적인 여성 인력 활용이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비춰보면 결국 돌봄 문제도 현실에 맞지 않은 무리한 외국인 가사근로사 도입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맞벌이 가정의 실질적인 니즈에 맞춰 공적 돌봄체계를 확충하고 육아휴직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더 늘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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