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0.78명입니다.
저출산 문제는 이제 우리의 미래마저 위협하고 있죠.
저출산의 원인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맞벌이 가정의 육아부담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주 많은 관심과 화제의 중심이었던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도 인력난을 겪고 있는 가사·육아 도우미 공급을 늘려 저출산에 대응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됐습니다.
생산인구 감소와 일자리 미스매칭 등으로 외국인력 '수혈'은 이제 불가피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그동안 '쿼터제'로 제조업·건설업 등 일부 업종과 또 제한된 숫자의 외국인력을 활용하다 보니 우리의 일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들이기엔 아직 벽이 높기만 합니다.
●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월 200만원?…"맞벌이 부부 감당 못해요"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1일 공청회를 열고 공개한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외국인 가사 전문 인력 약 100명이 이르면 연내 입국해 최소 6개월간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돕게 됩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필리핀 등 가사서비스 관련 자격증을 운영하는 16개 국가 출신이 대상으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인력(E-9 비자 대상) 취업비자를 받아 국내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정부 인증을 받은 가사 근로자 서비스 제공 기관과 계약을 맺어야 하며, 국내 가정에 투입되기 전 아동학대 방지는 물론 가사·육아, 위생·안전 교육을 받고 가정으로 출퇴근하면서 각종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육아비 부담 줄여 여성의 경력 단절 해소와 결혼·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찬성 의견도 많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논란거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먼저 실수요자인 맞벌이 부부들 사이에선 한국 고유의 가족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느냐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보다 더 쟁점이 된 건 실효성이었습니다.
정부는 이번에 추진하는 시법사업의 경우 '가사근로자법' 상의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등을 적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최저임금 9,620원을 월급으로 따지면 201만원 정도. 올 1분기 기준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505만원의 40% 수준으로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20·30대 젊은 부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죠. 내년에는 최저임금 기준 월급이 206만원으로 오릅니다.
가사근로가 기피 직종이 된 탓에 내국인 가사서비스 취업자는 2016년 18만6천명에서 지난해 11만4천명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가사서비스 종사자의 92%가 50대 이상으로 고령화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사도우미의 임금도 맞벌이 부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오르고 있는데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출퇴근하는 내국인 가사도우미의 시간당 임금은 올해 최저임금(9,620원)보다 훨씬 많은 1만5천원 이상을 줘야 합니다.
집에서 같이 사는 입주형 내국인 가사 근로자를 고용하려면, 서울지역을 기준으로 한 달에 350만∼450만원이 드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서울시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결국 이용자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가사 근로자 임금이 100만원 수준이 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 홍콩·싱가포르에선 월 100만원도 안준다?
우리나라처럼 저출산 문제가 고민인 여러 아시아 국가에선 우리나라보다 앞서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를 시행해왔는데요.
싱가포르와 홍콩의 경우 외국인 가사근로자들은 내국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이어서 70~100만원 안팎의 저렴한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가사근로자의 출신 국가에서 최저임금을 정하는데, 약 40만~60만원 수준입니다.
여기에 가사근로자 고용주는 매달 정부에 300싱가포르 달러(약 29만원)의 고용부담금을 냅니다.
싱가포르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해 싱가포르인 월 평균 급여는 약 496만원으로, 맞벌이 부부 소득의 10분의 1정도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홍콩의 경우에는 행정당국이 외국인 입주 가사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을 별도로 고시하는데, 지난해 기준 약 월 86만원이었습니다.
대만도 외국인 가사근로자들에 대한 최저임금 권고 규정이 별도로 있어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 중입니다.
하지만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중개기관 알선을 통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소비자가 직접 고용하는 가구 내 고용방식입니다.
이 때문에 고용주(각 가정)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임금 이외에도 고용안정기금, 보증금, 건강보험, 상해보험, 초과근무수당, 항공료 등과 같은 각종 부대비용도 함께 부담해야 합니다.
또 민간 중개기관이 외국인 가사근로의 선발과 배치, 교육훈련 등을 담당하고 있기에 대만과 싱가포르의 경우, 송출국과 수용국간 중개기관은 교육훈련 명목으로 가사근로자 당사자가 상당한 수수료를 부담하기도 하죠.
이러한 해외사례를 비춰볼 때 단순히 가사근로자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실질적인 수요가 있는 가정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줄어드는 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도 '월 200만원' 부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가사근로자 이용에 따른 비용을 낮추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함께 찾아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민간 인증기업이 외국인 가사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고 가정과 이용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시범사업 추진을도검토 중이라고 밝혔고요.
결국, 외국인 가사근로자에 대한 별도의 최저임금 적용이나 최저임금 국적별 차등화 등을 통해 월급 부담을 낮추더라도 정부가 예산 등을 통해 부대비용을 보전하고 숙식 문제 등을 해결할 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세금으로 보전하기에 조세 저항이 크다면, 기업이 얻은 수익을 직원의 복지로 재분배하는 방식으로 국민의 세금 대신 기업의 복지정책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또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해외에서 주로 채택하는 '민간 고용' 보다는 '기관 고용'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5월 '외국인 가사근로자 관련 공개 토론회'에서 "가구 내 고용 방식은 인건비 부담 이외에도 소비자의 비용 부담과 관리 부담이 크고, 노동인권 보호에도 열악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며 "현장에서도 기관 고용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다수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문화교류와 가사 서비스를 연계한 '오페어(Au Pair)' 방식도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오페어는 프랑스어로 ‘동등하게’라는 뜻으로 문화 교류와 가사 서비스를 연계한 제도인데요.
외국 가정에서 일정 시간 아이를 돌봐주고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며 숙식과 소정의 급여를 받기도 합니다.
● 육아·가사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외국인 최저임금 논의 본격화해야"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외국인 수요가 늘고 있는 분야는 '육아와 가사' 뿐만은 아닌데요.
간병인 분야의 수요도 앞으로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데다, 박봉이기까지 한 간병 업무는 내국인들의 기피 1순위입니다.
특히 개인 간병인을 두려면 비용 부담이 월 300만원은 훌쩍 넘어 '간병 파산시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해 기준 국내 간병인 3만5천명 중 40% 정도가 재중 동포(조선족)으로 채워지고 있고 기존 내국인 간병인은 고령화되고 있는데요.
이에 따라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는 외국인 간병인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용허가제(E-9) 외국인의 취업 범위를 가사도우미 이외에 간병 분야를 포함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면 근로기준법과 ILO(국제노동기구) 국제 협약 위반이라는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노동계에선 외국인 노동자 차별을 합법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고요.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은 점점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요.
이번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 도입을 계기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임금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사회적 합의가 더욱 절실해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