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자국 내에 있는 미국·유럽 등 서방 기업들의 자산을 사실상 압류할 수 있는 내용의 법령을 선포했다.
15일(현지시간) 모스크바타임스와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파이낸셜타임스(FT)를 인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주 이 같은 내용의 비밀 포고령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 법령은 매각 대상인 러시아 내 서방 자산을 상당한 폭의 할인을 적용해 우선적으로 사들일 수 있는 권한을 러시아 정부에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 서방 자산을 매입하는 주체는 완전히 러시아 소유여야 하며, 외국인 주주가 배제되도록 규정했다.
러시아에서 철수하려는 기업들의 자산을 사실상 손쉽게 국유화할 수 있게 해 서방 기업들의 '출구 전략'을 어렵게 만드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서방 투자자들과 기업이 러시아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지만,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나쁜(naughty) 기업들과는 작별을 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후에 그들의 자산으로 무엇을 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이 같은 법령을 만든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며 재정 상황이 악화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 현지 사업을 서둘러 정리하고 있는 한 사업가는 "국유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러시아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이 러시아에 가한 강력한 경제제재에 대한 보복 및 압박 성격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FT는 러시아가 자국 내 수천개의 서방 기업들에 대해 실제 이 같은 법령을 적용할지 저울질하는 동시에 서방에 동결돼있는 3천억유로(약 420조원)의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에 어떤 조치가 내려질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 정부는 2021년 이후 10억 루블(약 151억 원) 이상 수익을 낸 기업을 대상으로 이익의 10%를 횡재세로 한차례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 초안을 마련하는 등 세수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