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임파서블, 007시리즈 첩보 영화 장면을 따라 만든 게 아닐까 싶어요. 이걸로 맞붙으면 상대방 패 다 보면서 싸우는 셈이라, 덩치가 작아도 힘의 균형을 바꿀 수 있는 기술입니다.
꼬박 1년 3개월째 참혹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쓰이고 있죠. 군사력으로 미국, 중국 다음이라던 러시아이지만, 대당 수십억 기갑부대는 한 발에 1~2억을 오가는 재블린, 하이마스 정밀유도 무기 폭격에 맥을 추지 못합니다.
그냥 쏴도 일대를 초토화할 수 있는 이들 최첨단 유도무기를
더 적은 병력으로 이렇게 파괴적으로 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첨단 반도체, 그리고 소프트웨어입니다.
그 중에서도 대규모 언어모델로 흩어져있던 군사 첩보들을 싹 모아서 점괘 내놓듯이 시각화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장을 읽어 예측하는 인공지능 플랫폼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서 반짝이는 기업들을 들여다보는 '바이 아메리카'
오늘은 21세기 전장의 예지자, 미국 국가안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업, 팔란티어(티커명:PLTR)입니다.
왜, 스타크래프트에서 맵핵을 하고, 롤(LoL)에서 음영 지역을 다 걷어낸다고 생각해보면 돼요.
러시아 지상군이든 중국 해군이든 평소 감시하고 있던 정보에서 변동이 발생하는 즉시,
어떤 부대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미리 보고 대응할 수 있게 해줘요.
이렇게 일방적인 게임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팔란티어가 가진 플랫폼 '고담(Gotham)'에서 나옵니다.
네, 바로 배트맨이 지키는 빌런들의 도시 그 고담입니다.
왜 이렇게 거창한 이름인가 싶지만, 팔란티어부터 심상치 않아 여러차례 화제가 됐죠.
로고 모양이 마법사 수정 구슬을 닮았는데, 톨킨의 <반지의 제왕> 원작에서 '무엇이든 내다볼 수 있다'는 돌에서 이름을 따왔고,
본사를 부르는 별명 마저도 호빗들의 고향 '샤이어'입니다.
2001년 개봉한 반지의 제왕이 시리즈 내내 세계적인 화제였다고는 해도, 이 정도면 제대로 덕후가 된 사람들의 회사 아닌가 싶어요.
본래 미국 최초의 인터넷 결제시스템으로 혁명을 일으킨 피터 틸이 페이팔에서 금융사기를 잡아낸 기술 '이고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회사라는 건 잘 알려져있습니다.
피터 틸이 페이팔을 팔아 남은 돈을 들고 스탠포드 대학 동기이자 현재 최고경영자로 활동 중인 알렉스 카프, 스티븐 코헨, 페이팔 엔지니어였던 나단 게팅스를 불러 만들었는데 하나같이 다 괴짜입니다.
그 중 창업하는 것에 열중하고 우파 성향인 틸과 달리 산발한 회색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경영자 카프는 자유분방하고, 태극권과 주짓수에 심취한 괴짜인데요.
정보기술 분야는 전혀 전공하진 않았지만 엔지니어들도 놀라게 할 정도로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회사'라면서 외부와 연결고리를 만드는 핵심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20대 후반이었던 이들은 이미 인공지능으로 데이터를 추려내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관과 통찰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해요.
엑셀 스프레드시트, CCTV, 인공위성 첩보 정보, 각종 문서, 인적 사항 등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걸 시각화 하고, 정부와 군사, 기업의 운용 전략을 제공하는 플랫폼 고담이 이때 만들어 진거예요.
이런 신념으로 미국 CIA에 브리핑해서 인큐텔(in-Q-tel)로부터 200억 달러 투자를 유치받고, 이를 시작으로 미 국방부, FBI 등 군사,보안 영역 확장해 나갑니다.
지금은 매출의 60% 이상을 중후장대한 산업, 보안에 민감한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는데,
유럽 최대 항공기 제작회사인 에어버스, 영국 석유화학회사 BP, 미국의 금융회사 JP모건체이스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도 HD현대가 한국 사무소 지분을 공통 투자하고 있기도 합니다.
기업들은 군사용인 고담 대신 파운드리를 쓰고 있어요. 기업에 따라 맞춤형 빅데이터 분석툴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데, 에어버스가 A350 생산 차질 문제를 해결하고, 지난 팬데믹 기간에는 미국 정부에게 언제 마스크 해제를 해야하는지 판단 기준을 제공한 사실도 유명합니다.
아마존의 AWS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클라우드 서비스를 쓸 수 없는 대신, 정부 전산망과 군사, 첨단 기술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인공지능을 접목하려 팔란티어를 찾고 있는 겁니다.
팔란티어 주가는 전세계 주식시장 위축으로 고점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지만 기세가 남다릅니다.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1700만 달러 흑자를 내며 17년 만에 연간 흑자 기대감과 엔비디아가 불러일으킨 인공지능 열풍에 연중 120% 넘게 주가가 뛰었어요.
새로운 인공지능 플랫폼(AIP)은 올해들어 오픈AI가 불러일으킨 인공지능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으면서 투자가 다시 몰리고 있기도 하죠.
이렇게 보면 인공지능으로 기업 인력도 대체하고, 무기를 대체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팔란티어가 지향하는 건 조금 다릅니다.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이 기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요. "발전된 소프트웨어가 이를 가능하게 했지만, 더 중요했던 것은 애널리스트, 금융전문가, 과학자였다" 이 기술을 쓴 미국 군사당국자도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어요. "이 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들이 문제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즉 인간이 데이터와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팔란티어는 잘 훈련된 군사 조직을 가진 미국 등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새로운 전술을 제공하고, 오랜 제조업체들에게는 비용 통제와 시장 발굴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군사적 긴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하거나,고도화된 첨단 제품 생산을 매끄럽게 이끌어 내는 면에서 꼭 사야만 할 것 같은 기업이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팔란티어가 투자자들에게 가장 취약한 건, 기업 경영자와 일반 주주가 공통의 목표를 갖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 회사에는 클래스A, 클래스B, 그리고 의결권이 약 50%에 육박하는 클래스F, 차등의결권 주식이 존재합니다. 틸과 카프, 코헨 이렇게 창업자 3인이 외부 주주에 흔들리지 않고 경영하겠단 이유로 등급을 나눈건데, 이미 막대한 자본을 가진 이들은 공모시장에서 주가가 내려도 딱히 손해볼 일이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또 조심스러운 건 범죄를 없애고, 지정학적인 위기 속에서 미국을 지키는 역할로 포지셔닝했지만 결국은 장사 수단일 뿐이라는 지적도 여전합니다. 미국 경찰들이 번호판 식별하는 기술을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 이걸 단시간에 해결하는 실질적인 플랫폼이 팔란티어에서 나옵니다. 몇 해 전에도 이민자 정보 식별로 크게 논란을 빚었는데, 장사하려 국민, 시민들 개인정보 팔아먹느냐라는 비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죠.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의 장기적인 성장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고, 미국 내 AIP 플랫폼 수주가 이어지고 있지만 확장성에 아직 의문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회사의 지속적인 흑자에 대한 월가의 시각은 다소 회의적입니다. 5월 초 기준 씨티와 도이치뱅크는 매도, 제프리스 등은 중립 의견을 유지 중이구요.
알렉스 카프는 올해 한 포럼에서 "중국과 러시아 위협에 대비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에 국방예산 1%만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을 더 하고, 사업할 기회를 달라는 장사치 말로 들리기도 하지만, 미래 전쟁의 불안이 커지는 지금, 방위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공지능 플랫폼에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은 그들이 만든 플랫폼 고담 속 배트맨처럼 시민들에겐 그저 빌런이면서 동시에 어두운 곳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으로 남는 걸 바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을 키우겠다'는 이들의 철학을 팔란티어는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요.
#기획:김택균 #구성:김종학 #편집: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