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숙적 이란, 시리아와 잇따라 관계 회복에 나선 뒤 중동 국가들이 본격적인 재결집에 나서고 있다. 이란 정부는 지난달 30일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2년여 만에 처음으로 시리아를 찾아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만나기 위해 두 차례 이란을 방문한 적은 있으나, 이란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시리아를 찾은 것은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처음이다.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시리아 정부 편에 섰다"면서 "전쟁 피해 복구를 돕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과 시리아간 무역은 연간 2억 5천만 달러 규모로 이란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두 나라간 관세를 정상화할 경우 5배 가량 증가할 수 있다고 이란 상공회의소는 분석했다. 이란은 범시아파인 아사드 정권과 함께 미국 주도의 중동 정책에 반대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두 나라는 시리아 내전 이후 여타 중동국가들의 관계 단절에도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유지해왔다.
하페지 알 아사드 정권을 이어받아 독재 정권을 구축한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2011년 민주화 시위를 잔혹하게 무력 집압하고, 2013년엔 반군을 상대로 사린 가스를 살포해 민간인 1,400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서방 세계 주도로 시리아와에 관계 단절에 나섰던 요르단,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중동 국가들이 12년여 만에 태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 이슬람 수니파 사우디가 지난달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전격적인 관계를 정상화한데 이어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이 같은달 12일 리야드에서 파이잘 메크다드 시리아 외무장관과 관계 회복에 공식합의했다. 기세를 몰아 중동 국가들은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리는 아랍연맹 회담에도 시리아를 초청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베이징에서 이란과 사우디간 협정 체결 뒤 중동 지역에 대한 경계령을 내렸지만, 지역 내 영향력은 예전같지 못하다.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블링컨 국무부장관은 동맹국들에게 아사드 시리아 정권와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비공식 루트를 통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터키와 시리아를 강타한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미국 등 서방세계가 중동의 긴장 완화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미국은 시리아로의 원조를 늘리기 위해 일시적인 제재를 완화했고, 중동 국가들이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다만 이라크와 쿠웨이트 등은 시리아와의 관계 정상화에 여전히 반발하고 있어 시리아의 아랍연맹 재가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이라크는 고위급 관리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다음 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