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와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부진으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한국은행 분석이 나왔다. 금융불안이 심화될 경우 미국 경제성장률을 최대 0.5%포인트 끌어내릴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는 한국의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은 12일 BOK 이슈노트 ‘금리인상 이후의 미국경제 상황 평가 및 시사점’에서 “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을 가계·기업 대신 은행 등 금융 부문이 대부분 지고 있다”며 “취약한 금융기관에서 유동성 및 신용 리스크가 언제든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은 전체 대출에서 고정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금리 인상기에 가계와 기업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다. 여기에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노동 수요가 견조한 상황이어서 예상보다 강한 경기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부동산·건설투자 등에선 금리 인상에 따른 파급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한은 분석이다. 금융기관들은 금리 상승에 따른 보유 자산가격 하락, 부동산 대출 부실화 등으로 건전성이 악화됐다. 채권 평가손실이 누적되면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과 파산으로 이어진 SVB가 대표적 사례다.
보고서는 “미 은행권의 미실현 손실은 국채·주택저당증권(MBS) 등 증권 부문에서만 7800억달러 수준이며 대출을 포함할 경우 1조7000억달러에 달한다”며 “‘금융기관 주가 하락→조달비용 상승 및 대출 여력 축소→수익성 악화→불안심리 확대’의 악순환으로 취약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업용 부동산 부문에도 위험이 크다는 평가다. 보고서는 “사무실 공실률이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금융 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상업용 부동산 관련 대출에서 중소형 은행의 비중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대출 부실이 심화될 경우 SVB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향후 금융불안 확산 정도, Fed 통화정책 기조에 따라 세 가지 시니리오를 설정해 미국 경제 영향을 점검했다. 우선 중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불안이 이어지지만 금융시스템 전반의 신용위축이 발생하지 않는 기본 시나리오 하에선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금융불안이 다른 부문으로 확산돼 글로벌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되고 실물경제로 일부 전이되는 상황에선 미국 성장률이 0.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금융불안이 해소될 경우에도 성장률은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기 회복세가 강화돼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Fed의 긴축 기조가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시나리오에서도 미국 성장률이 0.2%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미국의 성장률 하락은 국내 성장에도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며 “특히 금융불안이 확산되는 경우뿐 아니라 Fed가 긴축 기조를 강화할 경우에도 우리 경제의 성장 및 물가, 외환·금융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