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납치·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이미 구속한 3인조에게 범행을 사주한 배후 세력이 존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3인조가 범행을 준비하는 단계에 가담한 또다른 공범을 확인하고 살인예비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납치 사건이 발생하기 전 한 코인업체 관계자로부터 피의자 이모(35)씨에게 수천만원이 흘러간 정황을 확인하고 이 돈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다.
앞서 이씨는 황모(36)씨에게 범행을 제안한 뒤 두 차례에 걸쳐 7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씨 역시 누군가의 제안 또는 사주를 받고 이번 범행을 꾸민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원한을 가졌거나 그의 재산을 노린 배후 세력와 이씨가 착수금 명목의 돈을 전달하며 납치·살인을 차례로 의뢰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이씨와 돈을 주고받거나 가상화폐 투자로 얽힌 인물 여러 명을 출국금지 조치하고 돈 거래내역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피해자를 직접 납치·살해한 황씨와 연모(30)씨는 경찰에서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그러나 피해자를 범행 대상으로 지목한 이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3인조 가운데 유일하게 피해자와 면식이 있는 이씨는 피해자가 일하던 가상화폐 업체에 투자했다가 약 8천만원의 손실을 봤으며 그와 같은 회사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20대 A씨가 황씨·연씨와 함께 범행을 준비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전날 A씨를 불러 조사했다. 살인예비 혐의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면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할 방침이다.
A씨는 지난 1월 황씨로부터 피해자를 살해하자고 제안받았고, 미행 단계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황씨는 "코인을 빼앗아 승용차를 한 대 사주겠다"며 A씨를 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후 황씨·연씨와 함께 렌터카 등을 이용해 피해자를 미행·감시하며 납치·살해 시기를 엿보다가 지난달 중순 범행에서 손을 뗐다고 진술했다.
A씨는 과거 배달 대행 일을 하며 황씨 등과 알게 된 사이로, 피해자와는 일면식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와도 범행 모의 과정에서 만났을 뿐 이전에는 몰랐던 사이라고 진술했다.
이씨 등 앞서 검거된 3명은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46분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귀가하던 피해자를 납치해 이튿날 오전 살해하고 대전 대청댐 인근 야산에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강도살인·사체유기)로 이날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