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는 11개월간 해외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인터넷 생방송에 출연하는 등 대놓고 공개행보를 이어왔다.
테라USD(UST)·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의 공동창업자인 권 대표는 폭락 사태 직전인 지난해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한국 검찰은 지난해 9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권 대표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또 당시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던 권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공조해 인터폴 최고등급 수배인 적색수배를 대상에 올렸다.
하지만 권 대표는 적색수배 직후 트위터를 통해 "나는 절대 숨으려고 하지 않는다. 산책하고 쇼핑몰도 간다"며 도주설을 부인했다.
그는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트윗을 올리고 기자나 팟캐스터들과도 인터뷰를 하며 목소리를 냈다고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권 대표는 이달 초 NYT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거주지를 당국과 공유하겠다는 요청을 거절한 적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권 대표는 "그들은 분명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그는 또한 오픈소스(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소스코드를 무상공개하는 것)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기술적인 자선사업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권 대표는 한국 검찰이 체포영장을 발부한 두 달 뒤인 지난해 11월에는 암호화폐 관련 인기 팟캐스터 2명이 진행하는 실시간 방송에 참여했다.
이 방송에는 천문학적인 약값 폭리를 취해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밉상 사업가'로 꼽히는 마틴 쉬크렐리가 함께 출연해 권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증권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쉬크렐리는 권 대표에게 "감옥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최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이에 웃음을 띤 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게 돼서 좋다"고 화답했다.
그는 트위터에도 종종 글을 올렸는데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파산한 뒤에는 더 잦아졌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법무부에서 FTX 공동설립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루나의 붕괴를 초래한 시세조작에 관여했는지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링크하고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질 것"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23일 유럽 발칸반도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권 대표는 테라·루나 폭락과 관련해 시세조종과 증권사기 등의 혐의로 각각 한국과 미국, 싱가포르 당국의 수사를 받아왔다.
그는 테라가 자매 코인 루나와의 교환 등을 통해 달러화와 1대 1의 고정교환 비율을 유지하도록 설계됐다고 홍보해왔으나 지난해 5월 관련 시스템이 작동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테라와 루나의 대규모 투매사태가 발생, 세계 가상화폐 시장을 강타했다.
테라·루나 폭락으로 테라폼랩스가 무너졌고 가상화폐 헤지펀드 스리애로우스캐피털(3AC), 코인 중개·대부업체 보이저 디지털, 거대 가상화폐 거래소 FTX 등의 연쇄 파산으로 이어졌다.
이에 한국과 싱가포르, 미국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달 중순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권 대표 등이 스테이블 코인을 포함한 무기명 증권을 판매해 투자자들에게 최소 400억달러(약 52조원) 규모의 손해를 끼쳤다며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를 사기 혐의로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권 대표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몇시간 뒤 미국 뉴욕 검찰은 그를 증권 사기와 상품사기, 시세조종 공모 등 8개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