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ICC)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17일(현지시간) 전격 발부했다.
ICC 전심재판부(Pre-Trial Chamber)는 이날 오후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지난 2월 22일 검찰 청구를 토대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아동을 '불법적으로 이주시킨'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볼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이 같은 범죄가 침공 당일인 최소 작년 2월 24일부터 시작됐다며 "해당 행위를 저지른 민간 및 군 하급자들에 대한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날 푸틴 대통령과 함께 마리야 리보바-벨로바 러시아 대통령실 아동인권 담당 위원에 대해서도 동일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ICC가 공식적으로 러시아 최고위급 인사를 피의자로 특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원수급으로는 수단의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대통령,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에 이어 세 번째 ICC 체포영장 발부 사례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ICC가 영장 발부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에 앞서 검찰이 이미 지난달 말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며칠 전인 지난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일부 외신에서 체포영장 청구 가능성이 보도됐을 때만 하더라도 ICC는 "진행 중인 특정 사건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는다"며 답변을 거부한 바 있다.
재판부는 성명에서 "(당초) 피해자와 목격자를 보호하고 수사 보호를 위해 영장이 비밀에 해당한다고 봤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럼에도 현재도 해당 행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영장 공개가 추가적인 범죄를 막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ICC 서기국에 영장 발부 사실과 피의자 이름, 혐의 등을 공개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사법 이익에 부합한다고 봤다"고 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수사를 총괄하는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우리가 확인한 사건에는 최소 수백명의 우크라이나 아동이 고아원과 아동보호시설에서 납치돼 (러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한 사실이 포함된다"며 "아동 다수가 이후 러시아에 입양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칸 검사장은 "아동들에 대한 러시아 시민권 부여가 신속히 이뤄져 러시아 가정에 수월하게 입양될 수 있도록 푸틴의 대통령령을 통한 법 개정도 이뤄졌다"며 "아이들이 전쟁의 전리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ICC가 첫 강제수사 대상부터 푸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만큼, 향후 다른 러시아 인사들에 대한 강제 수사도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칸 검사장도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며 "향후에도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영장 청구가 필요한 경우 이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물론 체포영장이 발부됐더라도 푸틴 대통령 신병 확보는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통상 ICC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당사국은 ICC 규정과 자국 국내법상의 절차에 따라 체포 및 인도청구를 이행해야 하지만, 러시아는 2016년 ICC에서 탈퇴해 현재 회원국이 아니어서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ICC는 피고인이 참석하지 않은 결석 재판은 진행하지 않으므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재판 개시 시점도 불투명하다고 CNN은 짚었다.
다만 ICC가 체포영장 발부를 시작으로 푸틴 대통령을 전쟁범죄자로 기소한다면 국제사회에서 갖는 상징적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ICC 회원국들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혐의자면 외국 정부 수반일지라도 체포해서 ICC에 넘겨야 하므로 푸틴 대통령이 해외 방문을 자제하는 등 외교적 고립도 심화할 전망이다.
ICC 영장 발부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EU), 영국, 체코 등은 잇달아 환영 입장을 냈다.
반면 드미프리 페스코프 러 크렘린궁 대변인은 ICC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이런 종류의 어떠한 결정도 법의 관점에서 무효하고 효력이 없다"고 깎아내렸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체포영장 발부에 따라 해외 방문이 우려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이 주제에 대해 더 덧붙일 얘기가 없다"고 답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ICC는 전쟁범죄, 침략 범죄, 반인도 범죄, 제노사이드 등 국제사회 공통의 관심사이자, 가장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 기관이다. 이런 범죄 혐의가 입증되는 경우, 국가원수의 면책특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