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둘러싼 진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보완 지시와 소위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반발이 가라앉지 않자, 개편안은 '주 50시간대'로 후퇴한 모습인데요.
그만큼 장시간 근로에 대한 우려, 또는 우려를 넘어선 공포감이 크다는 반증이겟죠.
70년간 유지돼 온 1주 단위 획일적 경직적 규제에서 벗어나, 일할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쉴 때는 푹 쉬자는 취지는 물론 공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장시간 근로가 우대받고 상명하복이 일반화된 문화, 일과 삶의 조화가 아직은 우선시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 '무한정 공짜야근'이 많아지거나 일한 뒤에 제대로 쉬지 못하는 부작용이 더 걱정스러었던 거죠.
근로시간 유연화의 장점을 살리면서 '묻지마 칼퇴'와 '눈치 안보는 휴가쓰기'가 보장되려면 "일한만큼 보상"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됩니다.
● 출퇴근 시간 기록, '주52시간제 유연화' 필수 요건이지만….
일한 만큼 보상받으려면 얼마나 일했는지 정확히 기록되고 관리되는 것이 우선이겠죠.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 대한 기록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법적 의무는 아닙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계약에 관한 중요한 서류를 3년간 보존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 출퇴근 시간에 관한 서류는 없습니다. 따라서 출퇴근시간 기록에 관한 서류를 보관하지 않는다고 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사업주가 처벌받는 것은 아니죠.
다만,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할 때 출퇴근 자료, 연장 근로 내역 등 근태 자료를 반드시 요구합니다. 주 52시간 위반 여부, 연장·야간, 휴일근로에 관한 관리 방법, 연장·야간, 휴일근로 수당의 지급 근거 차원에서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용부는 유연근무제 지원금 제도를 통해 근로자의 출퇴근 시각 관리도 지원하고 있는데요.
선택근무제(1개월의 1주 평균근로시간이 주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1주 또는 1일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제도), 재택근무제, 원격근무제 등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중소·중견기업은 연간 최대 360만원의 인사노무관리비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의무 요건이 지문 인식, 전자 카드, 그룹웨어 등 전자, 기계적 방식으로 관리한 출퇴근 시간을 반드시 기록해야 하는 것입니다.
● 근로시간 제대로 기록했더니…"일한 만큼 보상 받았어요"실제 현장에서는 근로시간 기록·관리 프로그램 도입으로 포괄임금 약정방식을 실근로시간에 따른 수당 지급방식으로 대체하거나 유연근무를 활성화 해 실근로시간을 줄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52시간제 유연화의 걸림돌이었던 '공짜야근', '야근갑질'의 주범 포괄임금(수당을 급여에 미리 포함하는 계약 형태)의 오남용을 뿌리뽑고 휴식이 보장되는 근로시간 선택권을 넓히려면 투명하고 과학적인 근로시간 기록·관리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고용부가 근로시간 기록·관리 우수 정보통신(IT) 기업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근로시간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인사담당자는 "포괄임금 대신 선택적 근로시간제도를 도입하면서 자연스레 근로시간 기록·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며 "이전에는 기록·관리를 하지 않아 정확한 수치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체감상 실근로시간이 줄었다"고 귀띔했고요.
또 다른 인사담당자는 "실무적으로는 '근로시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근로문화와 조직문화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근로시간 기록·관리가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되도록 지원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산정된 근로시간이 법적·행정적으로 효력을 가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한 근로자는 "포괄임금 약정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회사에 근로시간 기록·관리 제도가 도입됐는데 자신의 근로시간을 수시로 확인하고 설정할 수 있어 자율출퇴근제가 가능해졌다"며 "연장근로 수당이 제대로 지급돼 일한 시간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는다는 기분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MZ세대 근로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데요.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지난 16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해 연 2030자문단과의 간담회에서도 참석자들은 "근로시간 개편에 앞서 근로시간 기록·관리 확산,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같은 대책들을 현장에 안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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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선 근로시간 관리 의무화…국내선 법안 통과 '요원'일본,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시간을 의무적으로 기록하고 이를 2년에서 3년간 보관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과도한 연장근로를 막기 위해 근로시간 기록을 의무화해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우선 국회에선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근로시간 기록의 10년 동안 보존을 의무화하고, 사용자가 노동시간 기록을 축소하거나 확대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고요.
같은 해 이용득 민주당 의원은 근로자가 노동시간을 의무적으로 기록해 정부가 만든 노동시간 클라우드(노동시간 관리체계)에 등록·신고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고용정책 기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9월에도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사용자의 노동시간 기록 및 노동부 제출 의무 △근로자의 노동시간 기록 열람 및 등사권 보장 △노사분쟁 시 노동부가 노동시간을 입증해주는 '노동시간인증제'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공짜노동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 및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단발성 법안 발의에만 그쳤을 뿐,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해 이 법안들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기업마다 근로시간 기록을 보존해 칼퇴근을 보장하겠다는 일명 '칼퇴근법'은 2017년 대선 당시 여야 공동 대선공약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출퇴근시간 의무기록제 도입으로 눈치야근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에도, '칼퇴근'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업무성격이 각기 달라 모든 직무에 적용하기 어렵고, 업무 지시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칼퇴근법' 공약은 실종되고 말았죠.
윤석열 대통령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보완 지시에 발표가 미뤄지긴 했지만, 정부는 조만간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대책을 내놓을텐데요.
여기에 근로감독 역량 집중, 노·사 자율 개선 지원과 함께 '투명한 근로시간 기록·관리 활성화' 방안도 담길 예정이라고 하니, 일한 만큼 보상받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될 지 지켜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