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노역하다 왼손 검지가 잘렸는데 일본인 감독관이 '웃기다'며 손가락을 공중으로 연신 던졌습니다. 그것에 대한 울분이 남아있습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는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아픈 기억을 다시 꺼냈다.
이날 행사는 6일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해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시민사회 단체들이 구성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이하 평화행동)이 긴급히 마련했다.
김 할머니는 "일본에 사죄를 받으려 하는데 (지금은) 애먼 소리만 나오고 있다. 지금도 일본은 잘못했다고 말 안 하는 심보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함께 자리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소학교) 교장선생이 일본에 가면 공부를 시켜준다고 했지만 미쓰비시에 가서 고생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가 고픈 게 힘들었다"며 "일본 여성들이 먹다 남긴 밥이라도 먹고 싶은데 굳이 그것을 짓이겨 밟고 갈 때가 제일 서러웠다"고 회상했다.
두 할머니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정부의 해법대로라면 한국 기업이 출연한 기금으로 손해배상을 받게 되는 대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손해배상을 거부한다는 뜻을 이날 재확인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강제징용 해법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인지 외교부에서 (피해자들에게) 집요하게 만남을 요청해왔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소송 3건의 피해자 15명 중 13명의 피해 당사자, 유족, 가족을 접촉해 해법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외교부가 이들에게 '빠른 해결을 바란다'는 말을 들었다는데 빠른 해결을 바라는 것은 맞지만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안된다"며 정부가 졸속으로 의견을 청취했다고 지적했다.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등 611개 단체로 구성된 평화행동은 간담회에 앞서 이날 오후 1시 국회 앞에서 낸 긴급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에서 "2023년 3월6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악의 날, 제2의 국치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식민지배는 불법'이라는 우리 헌법의 근본 질서를 스스로 훼손했다"며 "일본이 진정으로 통절하게 반성한다면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면 될 일"이라고 촉구했다.
평화행동에 따르면 1천464개 단체를 비롯해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신경림 작가 등 9천20명이 시국선언에 연명했다.
평화행동은 '강제동원 해법 무효 범국민 서명'을 시작하기로 했으며 11일 서울광장에서 강제징용 해법의 무효를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개최한다.
이 단체는 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조성할 계획인 '미래청년기금'에 대해서도 "전형적인 물타기요, 미래세대를 식민화하려는 음모"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일본 유학생을 위한 장학기금 조성이 한반도 불법 강점, 강제 동원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피해자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안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행사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의원들도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 자리에서 "과거 잘못된 위안부 합의로 박근혜 정부가 어떤 심판을 받았는지 윤석열 정부는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며 "국민이 분노하고 피해자가 분노하는 새로운 문제 야기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대한민국 대통령이냐, 일본 대통령이냐를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묻는다"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치적 쌓기로 묻으려는 결정에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