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화물차 안전운임제를 폐지하고 표준운임제를 도입하는 방안과 함께 화물운송사업 정상화의 승부수로 `지입제` 퇴출을 내세웠다.
1960년대부터 이어져온 화물 운송시장의 구조적 문제인 `번호판 장사`를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가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해묵은 사안이라 이번엔 다를지 주목된다.
지입제 폐지와 함께 논의하는 표준운임제에 대해선 더불어민주당과 화물연대, 운송사들이 반대하고 있어 논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입제는 화물차 기사가 자신의 차량을 운송사 명의로 등록한 뒤, 사실상 독립적인 영업을 하면서도 운송사에 번호판 대여 비용인 지입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통상 번호판 하나에 2천만∼3천만원을 호가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화물자동차운송사업의 지입제도에 관하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제도는 1960년대 우리나라에 화물차운송시장이 태동하면서부터 함께 존재해왔다.당시 운송사업이 일본의 제도를 상당부분 받아들여 정립되면서 지입제가 그대로 밀려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감을 따오지 않고 번호판 장사만 하는 지입전문회사의 폐단이 나타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화물차 운송시장은 등록제로 운영돼, 신규 차량 진입이 자유롭게 이뤄졌다.
화물차 과잉 공급으로 인한 운임 하락에 반발한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을 계기로 화물차 운송시장은 2004년 허가제로 전환됐다. 차종별로 증차를 제한하고 영업용 번호판을 단 화물차의 진입만 허용했다.
당시 허가제는 신규 화물차의 진입을 막기 위한 조치였기 때문에 시장에 들어오기 위한 방안으로 지입제가 활용됐다.
그러자 일부 운송사들은 공급 제한을 악용해 번호판에 프리미엄을 붙여 빌려주기 시작했다. 번호판이 없으면 운행을 못 하는 차주들에게는 수천만원의 권리금을 받았다.
권리금을 차주에게 돌려주지 않거나, 차주가 노후 차량을 교체하려 하면 동의 비용을 요구하는 등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챙겼다.
현재 사업용 화물차는 44만5천대로, 이 중 지입차는 10만대 정도로 추산된다. 전체 화물차의 22.5%가 지입차인 셈이다.
1순위 퇴출 대상은 일감 제공 없이 번호판 대여만으로 수익을 올리는 지입전문회사다.
정부는 운송사가 제공해야 할 일감의 기준을 20%로 둘 방침이다. 화물차 기사 평균 매출액의 최소 20%는 지입회사에서 제공해야 하며, 기준에 못 미치면 보유 차량을 감차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컨테이너 화물차주 평균 매출이 1억원이라고 한다면, 운송사로부터 받는 일감이 2천만원 이하일 경우 해당 화물차 기사에게 개인운송사업자 허가를 내주겠다"며 "이렇게 하면 직영제가 촉진되고 화물차주 권리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송 일감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 지입회사 번호판을 빼앗아 화물차 기사에게 준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화물차의 탄력적 공급을 제한하는 수급조절제를 개선할 방침이다.
운송사가 차량과 운전자를 직접 관리하는 직영차량에 대해선 신규 증차를 허용하고, 대·폐차 시 차종·톤급별 교체범위 제한을 현행 `5t 이내 상향 허용`에서 `10~16t`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앞서 2004년과 2010년에도 지입제 개선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의지가 강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표준운임제 도입과 지입제 폐지 등 `화물운송사업 정상화 방안` 추진을 위해선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조만간 법안을 제출하게 될 것"이라며 "가장 대표적인 민생법안, 중점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정은 3월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기존 안전운임제를 3년 연장하는 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사하지 않을 경우 본회의에 직회부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전운임제 유지를 주장하는 화물연대를 설득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는 "정부의 표준운임제는 비용 인상을 근거로 안전운임제 폐지를 주장한 화주 대기업만의 의견을 선별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며 "사실상 제도를 폐지하는 수준의 개악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화주가 운송사에 지급하는 운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화물노동자가 받는 최소 운임 역시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 자명하다고 주장한다.
지입제 폐지에 대해선 "다단계 축소를 통한 전체 물류비용 절감과 중간착취 근절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주에게 책임을 부과할 필요성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는 화주 편만 드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정부가 화주 편을 들어 화물차주들의 처우가 일방적으로 방치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데, 정반대일 것"이라며 "논의를 통해 충분히 보장할 테니 안심해달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